Chris Choi's Blog

빨간책방에서 만난 로봇의 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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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함께 하는 독서가 좋습니다. 이해하지 못하고 넘어갔던 부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어서도 좋고, 책을 시작하기 전에 큰 그림으로 이해해 볼 수 있어서도 좋습니다. ‘이동진의 빨간책방’은 함께 하는 독서에 좋은 친구입니다.

 

[Link 1. “이동진의 빨간책방”]

 

선거를 마치고 합정동에 있는 빨간책방 Café로 향했습니다. 인공지능과 로봇의 미래, 그리고 사회의 변화를 다루고 있는 “로봇의 부상”을 함께 읽었습니다. 부스를 가득 채운 책 이야기를 전해 드립니다.

 

빨간책방에서 만난 로봇의 부상_Image 1.jpg

[Image 1. 로봇의 부상을 다루었습니다. 출처: 이동진의 빨간책방 Facebook]

 

호기심

프쉬케가 상자를 연 이유. 그것은 호기심이었습니다. 보고 싶고 알고 싶은 마음입니다. 호기심은 그리스 철학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특성이 호기심이라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합니다.

호기심은 새로운 발견과 앎의 동력이 됩니다. (실패를 무릅쓰고) 일을 저지르게 합니다. 호기심이 없었다면, 상자를 열지 않았다면 프쉬케와 에러소의 완전한 결합은 없었을 것입니다.

낯선 것, 새로운 것을 만나면 두려움과 호기심이 동시에 생깁니다. 어느 것을 따를까 고민이 생깁니다. 이런 방송을 누가 들을까 하는 두려움, 어차피 책 읽는 것 나누넌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을 안고 Podcast를 시작했습니다. 어느덧 4년이 되었습니다.

 

세기의 대국, 이세돌 9 vs. AlphaGo

바둑을 몰라도 인간과 기계의 바둑 대결은 흥미로운 일이었습니다. 인공지능이 이 정도로 진화해 4대 1로 승리했다는 점, 이세돌 9단이 한 번 이겼다는 점 모두 놀라움이었습니다. 그 가운데 저항감도 느껴졌습니다. 인간을 뛰어넘는 인공지능이 계속 나온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요?

대국 시작을 앞두고는 관심이 많지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YouTube로 중계를 보고, 심지어 방송사 중계권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대국은 모든 방송사들이 중계에 나섰습니다. 모든 채널들이 바둑을 생중계 하는 일은 처음이자 마지막이 아닐까요?

AlphaGo는 하수의 수를 두고 있다는 느낌을 주다가, 갑자기 역전을 하기도 했습니다. AlphaGo가 바둑을 두는 방식은 인간이 두는 방식과 달랐습니다. 승률을 계산하지만 엄밀하게 우리가 얘기하는 방식의 바둑을 두는 것은 아닙니다. AlphaGo는 복기를 하지도 않습니다. 왜 그 자리에 수를 두었는지 설명할 수 없습니다. AlphaGo가 두는 것은 바둑일까요? 다만 바둑의 Rule로는 압승을 거뒀습니다.

우리가 마주할 인공지능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아마도 우리가 하는 일을 대체하게 되어도 우리가 일하는 방식과 다른 방식으로 접근할 것입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이해와는 다른 방식으로 이해할 것입니다.

 

문학과 음악에 이르다

AI가 쓴 소설이 일본의 한 문학상 1차 심사를 통과했습니다. 심사위원은 AI가 썼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AI가 쓴 것인지, 인간이 쓴 것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감동과 착상이 있는 작품입니다. 영화 “Her”와는 반대의 이야기로, AI의 입장에서 주인을 바라보는 이야기입니다. 더 이상 주인이 놀아주지 않아 인공지능이 외로움을 느끼고, 스스로 소설을 학습해 자신만의 작품을 씁니다.

아마도 아직은 AI가 100% 작품을 완성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큰 틀이나 상황이 주어지고, Algorithm은 단어를 선택하고 문장을 쓰는 데 사용될 것입니다.

이제는 AI가 교향곡을 작곡하는 시대입니다. 인공지능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고도화된 기능을 갖고 있습니다. 인간의 고유한 능력으로 여겨지던 창의력도 인공지능이 자가 학습을 통해 갖출 수 있다는 것이 현실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바둑이 철학이 있다 해도 어떻게 보면 결국은 연산입니다. 인간 중에도 극히 일부만 교향곡을 작곡할 따름입니다. 특정한 기능을 발전시키는 인공지능이 특정 분야에서 인간을 뛰어넘는 게 놀랄 일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AI가 창작하는 것은 Byte의 결합입니다. AI의 창작물을 글로 보는 것은 기계어를 자연어로 변환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AI가 쓴 소설을 보면서 감동을 받습니다. 감동도 기계가 만들어 낸 것일 텐데, 기계가 감동을 주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AlphaGo는 인간의 기보를, 소설 창작 AI는 인간의 소설을 학습한 것이므로, 인간의 방식으로 볼 수도 있겠습니다. AlphaGo는 바둑을 둘 줄은 알지만 즐길 줄을 모릅니다. 인간은 지는 바둑을 두면서도 배우고 느낍니다. 소설 창작 AI는 소설을 쓸 수는 있지만 감동 받을 줄은 모릅니다. 역설적으로  AlpahGo의 등장으로 인해 인간에 대한 정체성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로봇의 부상

시중에 인공지능과 관련된 많은 책들이 나와 있습니다. 오늘은 마틴 포드의 “로봇의 부상”입니다. 부제는 ‘인공지능의 진화와 미래의 실직 위협’입니다. 로봇과 인공지능에 관련된 다양한 이슈들을 골고루 잘 다루고 있습니다. 기술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경제와 정치가 어떻게 연결되는가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사례들을 담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설득력 있는 진단은 물론, 대안까지 제시하고 있습니다.

 

일자리의 감소

10년 뒤 나의 직업은 괜찮을까요? AI에 관한 가장 많은 기사가 AI가 대체할 직업입니다. 나의 미래, 그리고 자녀들의 미래에 관한 것이기에 관심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거대한 자동화의 물결은 인간을 노동에서 소외시킵니다. 자동화의 수익률은 높아지지만 근로 수익률은 낮아집니다. 디스토피아가 만들어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동화를 멈출 수 없습니다. 이것이 자동화, 기계화의 첫 번째 전제입니다. 러다이트 운동처럼 기계를 부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이미 많은 분야에서 기계화는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생각지 못한 많은 이점들이 있습니다. 인간이기에 발생하는 오류들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휴식이나 감정을 고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2013년 한 조사에 따르면 대표적인 직업 700개 중 완전 자동화가 가능한 직업이 무료 350개에 이른다고 합니다. 나머지 50%는 자동화가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부분 자동화가 가능합니다.

 

표준화

표준화, 균일화 되어야 대량 생산이 가능합니다. (닭을 양육할 때 크기를 일정 이상 되지 않도록 한다고 합니다.) 그래야 자동화에 용이하기 때문입니다. 기계화의 핵심은 표준 규격입니다. 친절한 점원이라도 고객마다 좋아하는 햄버거를 모두 기억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기계는 가능합니다. 햄버거 제품은 표준화 되어 있고, 조리 상의 약간의 차이도 표준화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기계는 고객의 Feedback을 받고 입맛을 기억하면, 다음에 동일하게 만들어 줄 수 있습니다. 중국과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생산하는 의류는 내 몸에 딱 맞지 않습니다. 자동화가 극대화 되면 내 몸에 맞는 옷을 주문하고 단시간에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자동화, 기계화의 좋은 점도 많을 듯 합니다.

그렇다면 소비자의 이익이 모든 이의 이익일까요? 은행이 예전에는 창구에서 수기로 Transaction을 처리했지만, 지금은 인간과의 접촉 없이 ATM에서, 온라인에서 처리합니다. 은행 지점 수가 급감하고 있습니다. 비디오 가게도 마찬가지입니다. Blockbuster 는 많은 수의 매장을 갖고 있었습니다. Netflix의 DVD 배송 서비스의 등장으로 매장은 급감하고, 급기야 사업을 닫았습니다. 지금은 DVD에서 Online Streaming 으로 다시 이동했습니다.

그렇다면 소비자의 이익이 모든 이의 이익일까요? 은행이 예전에는 창구에서 수기로 Transaction을 처리했지만, 지금은 인간과의 접촉 없이 ATM에서, 온라인에서 처리합니다. 은행 지점 수가 급감하고 있습니다. 비디오 가게도 마찬가지입니다. Blockbuster 는 많은 수의 매장을 갖고 있었습니다. Netflix의 DVD 배송 서비스의 등장으로 매장은 급감하고, 급기야 사업을 닫았습니다. 지금은 DVD에서 Online Streaming 으로 다시 이동했습니다.

Amazon의 거대 창고는 로봇이 관리합니다. 처리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습니다. 로봇의 엄청난 발전 속도는 Network를 통한 인공지능 간의 지식 공유로 더욱 빨라질 것입니다.

자동화가 되면 점점 인간의 개입이 필요 없어질 것입니다. 위험 시설 관리도 컴퓨터가 한다면 사이버 공격과 Hacking에 취약해질 수도 있다고 저자는 지적하고 있습니다. Networking의 함정으로 도시가 마비될 수도 있습니다.

 

농업과 자동차 산업

미국 서부의 넓은 경작지에서는 토마토보다 아몬드를 더 많이 생산합니다. 왜일까요? 아몬드는 기계화가 쉽기 때문입니다. 아몬드 열매가 나무에 열리면 호봇이 나무를 흔들어 아몬드 열매를 땅에 떨어뜨릴 수 있습니다. 떨어진 열매의 80% 가량을 수확할 수 있는데, 일일이 따는 데 노동력을 투입하는 것보다 썩데 두는 것이 더 효율적일 수 있습니다. 토마토는 자동화가 어렵습니다. 토마토를 다치지 않게 따는 기계를 만들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기계가 할 수 없기 때문에, 혹은 기계보다 인건비가 저렴해 인간이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 어떻게 보면 비참한 일입니다.

Google이 원하는 자율 운전차는 인간이 아무 손을 대지 않는 것입니다. 운전 면허도 필요 없습니다. Google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자동차 회사들이 자율 운전차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모든 자동차가 무인 자동차로 바뀐다면 자동차를 차고에 두고 탈 필요가 없어질 것입니다. 하나의 자동차에 네 개의 칸막이를 두고 공유하면 됩니다. 마치 콘도미니엄의 회원권처럼 자동차를 구매하면 됩니다. 자동차 가격이 4분의 1로 내려가고, 택시처럼 차를 부를 수 있습니다. 승객이 지루해 하지 않도록 유리창에 가상 화면을 띄워 영화를 봅니다.

부동산 문제 해결에도 도움이 됩니다. 주차장이 필요 없기 때문입니다. 자동차가 움직이는 시간보다 정차해 있는 시간이 더 길어 주차장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주차장은 5분의 1 수준으로 줄어도 됩니다. 주차장에서 사람이 타고 내리기 위한 공간도 필요 없습니다.

도로 위에 자율 주행차만 있다면 문제는 없습니다. 전체 자동차의 흐름을 네트워크로 관리해 사고 위험도 줄일 수 있습니다. 만약 인간이 끼어들고 난폭 운전이 발생한다면 자율 주행차는 위험을 회피할 것입니다. 인간 운전자만 유희할 수도 있습니다. 아마도 어느 단계에서는 Mized zone이 존재할 것입니다.

자동차가 무인화 된다면 경제적으로 엄청난 고용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자동차 제조사들의 직원 채용이 줄고 부품 회사 등 연관 업체들의 고용도 줄어들 것입니다. 이에 비해 새로운 기회로 생기는 일자리 수는 미비합니다. Google은 거대한 데이터 센터를 지었지만 고용하는 직원의 수는 극소수입니다. 같은 크기의 공장이 들어왔다면 수 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을 고용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1979년의 GM의 수익이 2012년 Googled의 수익과 비슷합니다. GM은 84만명을 고용했지만, Google의 총 직원 수는 4만 명에 불과합니다. 테크 산업의 특성이기도 하고 자동화의 필연이겠지만, 고용은 줄고 자본 생산성은 높아질 것입니다. 고용의 측면에서 자동화는 디스토피아에 가까운 것처럼 보입니다.

 

(요즘처럼 Smart Factory 지어진다면 물론 수는 현저히 줄어들 것입니다.)

 

그 공포를 피해갈 수 없습니다. 야구 경기 기사 작성은 이미 로봇이 하고 있습니다. Netflix, Watcha의 Curation도 로봇이 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더 많은 책, 더 많은 영화를 보는 게 의미가 있을까요?

 

교육과 의료

자동화가 가장 어려운 분야로 꼽히는 것이 교육과 의료입니다. 그렇지만 두 분야도 언젠가는 자동화 될 것입니다. 자동화가 되어도 문제가 있지만, 자동화가 되지 않으면 소수의 점유물이 될 수 있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또 하나가 교육입니다. 인간과 기계의 논술 채점에는 정확도 측면에서 차이가 거의 없다고 합니다. 기계가 채점해 불합격이 되었다면 결과에 승복할 수 있을까요? 대학들이 이미 AI를 사용하고 있음에도 말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신문 기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독자들이 기계가 작성했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오히려 불신이 커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 내에서는 AI가 논술 채점을 하는 것에 대해 거대한 저항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분들이 노암 촘스키, 스티븐 핑커입니다. 어떻게 보면 아이들이 AI가 쓰는 것처럼 정해진 형식에 맞춰 논술을 씁니다. 창의적인 것이라 할 수 없습니다. 교수들 역시 AI의 방식과 다르지 않게 채점할 것입니다.

MOOC를 이용하면 온라인으로 Stanford의 강의를 들을 수 있습니다. MOOC가 처음 나왔을 때 많은 사람들이 대학 교육의 비용을 줄이고 지식을 민주화 할 수 있어 센세이션을 일으킬 것이라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성과가 좋지 않았습니다. 대학을 다니기 어려운 저소득층 보다는, 학사에서 추가로 지식을 늘리기 위해 듣는 사람들이 더 많았습니다.

기득권과의 충돌, 소수들의 배타성으로 인해 학위 수여에 대한 이슈도 있었습니다. 초일류 대학은 분명한 반대를 표합니다. 초일류가 아닌 대학들이 학위를 수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시점이 되면 200명씩 한 강의실에서 듣는 강의의 효과는 없어질 것입니다. (물론 지금도 큰 효과는 없습니다.) 그 때가 되면 중상위권 대학들이 먼저 나설 것이고, 만약 전체적으로 확산된다면 파급 효과는 매우 클 것입니다.

자동화의 이점은 값이 싸진다는 것입니다.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무시할 수 없는 이점입니다. 다른 가격들이 떨어지는데 의료의 가격이 안 떨어진다면 저소득층은 의료의 혜택을 누리기가 더 힘들어질 것입니다.

 

Pattern

인류의 발달 과정을 보면 같은 패턴의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기계화는 패턴의 반복일까요? 아니면 인류가 겪은 적이 없는 새로운 종류의 문제일까요? 만약 전자라면 낙관적으로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후자라면, 문제는 심각할 수 있습니다. 저자는 후자에 손을 들고 있습니다. 미국 대공황 이후 비슷한 경제 사이클이 반복되었습니다. 그러나 2008년 경제 위기 이후 복구되는 과정이 이전과 달랐습니다. 이제는 실업자들이 비정규직으로 취업하고 있습니다. 사라진 일자리는 다시 생기지 않았습니다.

Instagram의 직원은 한 때 십여 명이었습니다. White collar가 더 위험할 수 있습니다. 단순 노무직을 자동화 하려면 현장에 Hardware가 필요하지만, White collar는 Softwarefh 대체가 가능하므로 더 쉬울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일은 예측 가능한 일이며, 그런 일들은 대체가 더 쉬울 것입니다.

 

돈이 돈을 번다

2014년은 숫자 상으로는 2008년 금융 위기로부터 회복된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회복 분은 대부분 자본으로 갔습니다. 소득의 양극화는 심각합니다. 피케티의 논지와 유사합니다. 돈이 돈을 법니다. 이에 반해 임금 노동은 지극히 일부입니다. 창출하는 가치에 비해 적은 돈을 받고 있습니다. 소득 불균형 해소가 매우 중요합니다. 피케티의 주장처럼 자본 수익에 과세를 해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합니다.

미국에서 세율이 가장 높았던 시기는 1970년대입니다. 부유층에 대한 세율이 70%에 이르렀습니다. 현재는 40% 수준입니다. 1970년대에 가장 창의적인 기업들이 탄생했습니다. 세율을 높이는 것이 기업의 의욕과 노동자들의 의욕을 꺾을까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예전에는 계층의 이동성이 존재했습니다. 지금은 계층의 이동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아무리 잘 해도 중산층으로 사는 정도입니다. 근로소득은 제한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본소득이 자산을 증가시키는 데 훨씬 유리합니다. 근로소득세율은 떨어뜨리고 자본소득세율을 높여야 합니다. 아마도 지금은 근로소득세율이 더 높을 것입니다.

 

기본 소득의 보장

기본 소득의 보장은 장기적으로 중요한 정치적 주제가 될 것입니다. 기계화가 계속 진행된다면 제대로 된 일자리의 수는 현저하게 줄어들 것이고, 양극화도 심화될 것입니다. 기본 소득의 보장 없이는 사회가 돌아가지 않을 정도로 소비가 침체될 것입니다. 기본 소득의 수준은 어느 정도가 되어야 할까요? 많이 주면 근로 의욕을 꺾을 수 있습니다. 생계가 가능한 만큼, 그리고 근로 의욕을 꺾지 않을 만큼 기본 소득을 제공해야 할 것입니다.

노동자는 동시에 소비자입니다. 소비는 생산만큼 중요하다는 것이 자본주의의 전제입니다. 자동화로 인해 실업자가 늘면 생산은 가능할 지 모르지만 소비는 침체될 수밖에 없습니다. 로봇은 소비를 하지 않으므로 구매력이 약화될 것입니다. 늘어난 생산성이 구매로, 소비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최상위층도 타격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저자는 $1,000 정도의 기본 소득 보장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대상은 최상위 1%를 제외한 전국민입니다. 전국민이 기본 구매력을 갖게 되고 인간에게 필요한 최소 비용을 사용할 수 있다면 소비 침체를 방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단, 큰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재원의 마련입니다. 세금을 인상할 수밖에 없습니다. 선거 때마다 정치인들은 복지를 말하지만 재원은 말하지 않습니다. 최상위 1%에게 더 많은 세김을 부과하고, 모든 국민이 어느 정도 증세를 감수하지 않으면 기본 소득에 대한 논의는 진행되기 어려울 것입니다. 미국이 루즈벨트에서 Obama Care까지 오는 데 80년이 걸린 것을 보면, 증세 관련 이해관계를 푸는 것은 쉽지 않아 보입니다.

예를 들면 소득 하위 20% 지급과 같이 차등 지급은 안 됩니다. 직장을 가져 낮은 급여를 받으나, 직장을 가지지 않고 기본 소득을 받으나 차이가 없다면 근로 의욕을 상실할 수 있습니다. 물론 무상급식 때와 같은 저항이 있을 수 있습니다.

물론 아직 기본 소득을 실현해 본 국가가 없으며, 고려하지 못한 단점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다만 그러한 고육지책을 제안하는 철학적 근원을 이해하고, 거기서부터 생각해 봐야 하겠습니다. 힘들더라도 논의를 시작해야 합니다.

 

Implication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적인 것은 무엇인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가 이어가야 할 질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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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Chris Choi

April 19, 2016 at 9:10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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