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is Choi

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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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다룬 영화는 ‘결정’을 해야 한다. 이준익 감독의 『사도』가 그렇다. 영조의 편에 설 것인가, 아니면 사도세자의 편에 설 것인가, 아니면 3자의 편에 설 것인가. 단순히 시점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다. 갈등의 원인이 누구에게 있는가를 결정하는 것이다.

김지운 감독의 『밀정』도 결정을 해야 했다. 실존 인물인 황옥을 어떻게 그릴 것인가? 친일에서 독립 투사로 변화하는 인물로 그리고 있다. 이정출은 – 적어도 영화 상에서는 – 악랄한 인물은 아니다. 김장옥을 포위한 일본군에게 ‘쏘지마!’, ‘물러서!’라고 말하며 그의 목숨만은 건져 내려고 한다. 김장옥의 부러진 발가락을 버리지 않고 갖고 있는다. 몇 차례의 위험을 무릅쓰고 김우진과 의열단원들을 돕는다.

오히려 그는 현실적인 사람이다. 기울어진 배에서 탈출하기 위해 친일로 돌아섰다. 그 결정을 다시 한 번 뒤집는 일련의 사건들이 영화에서 펼쳐진다. 정채산 (김원봉) 과의 만남, 김우진과의 우정, 히가시의 의심 등 이정출이 마음을 돌리게 되는 요인은 영화 내내 이어지고 있다.

이 같은 결정들이 역사적 논란을 점화하는 역할을 한다. 혹여 영화적 결정이 틀렸거나, 근거가 다소 빈약하더라도 지나친 왜곡이 아니라면 괜찮다고 생각한다. 진실이 무엇인지 밝히려는 시도이기도 하고, 역사 전문가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Link 1. “사도”]

 

알면서 모르는

보통 적과의 동행은 각자의 꿍꿍이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공동의 목표가 있다. 『의형제』를 보면 알 수 있다. 각자 필요로 하는 정보를 캐려는 꿍꿍이를 숨기되, 돈을 벌어야 하는 공동의 목표를 수행한되. 물론 공동의 목표는 표면적이다. 그러다 정말 의형제가 된다.

‘알면서 모르는 척’ 해야 하는 연기는 두 배우의 합이 굉장히 중요할 듯 하다. 한 쪽이 속내를 완벽히 숨기지 못하거나, 어색함을 이겨내고 공동의 목표를 수행하는 척 하는 데 실패한다면 긴장감은 흐뜨러진다. 송강호님과 공유님은 탁월하게 긴장감을 유지했다고 생각한다.

『밀정』의 난이도가 더 높았던 것은, 이정출 (송강호님) 이 하시모토 (엄태구님) 와의 동행도 그 긴장감을 유지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 호흡도 좋았다. 좌측과 우측이 팽팽히 맞서는 줄다리기와 다른 모습이다. 좌측은 한 명이 줄을 당기고 있지만, 우측은 두 명이 45도로 벌려 자기 방향으로 줄을 당기는 모습이다.

 

기차

주연 배우들이 『설국열차』와 『부산행』에서 제대로 된 기차 Scene을 경험해 봤기 때문인지, 『밀정』에서의 기차 Scene도 흠 잡을 점이 없었다고 생각한다. ‘알면서 모르는 척’이 극대화 되는 공간이 기차다. 화장실을 제외하고는 모두 열린 공간이다. 한 쪽에서 다른 한 쪽으로 가려면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을 만나야만 하는 것이 기차다.

우리 속의 밀정이 있음을 알게 되는 것이 기차다. 그 속에서 밀정을 찾아 내야 한다. 증거는 없다. 어떻게 증거를 만들 것인가? 김우진의 기지로 제한된 공간에서 밀정을 찾아 낸다. 그 과정에서 기저귀와 담배로 위기를 넘긴다. 가장 극적인 순간에 한 칸에 갈등의 인물들이 모두 모인다.

 

[Link 2. “부산행”]

 

자동차

기억에 남는 자동차 Scene이 두 개 있다. 상해에서 만난 이정출과 김우진. 기차 사건 이후 만난 이정출과 히가시. 뭔가 불편한 상황이다. 첫 번째 Scene에서는 김우진이, 두 번째 Scene에서는 히가시가 앞 좌석에 앉는다. 그들이 정면을 보고 있을 때는 심경을 표정으로 드러내고, 뒷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때는 표정을 숨긴다. 기차와 마찬가지로 닫힌 공간에서 느껴지는 긴장감은 무언가 다르다.

 

법정과 불고문

의열단원이라고 외치고 싶었을 것이다. 불고문을 하지 않도록 연계순이 김우진의 위치를 실토하기를 바랬을 것이다. 그러나 속내를 드러내면 모든 것이 엉망이 된다. 그래서 법정에서는 입술을 물고, 고문장에서는 소리를 지른다. 내 안의 두 마음이 겪는 갈등이 극에 달한다.

 

사진과 시계, 그리고 골동품

추억이 가장 잘 묻어 나는 물건을 떠올려 본다. 사진과 시계다. 빛 바랜 사진과 조금 녹이 슨 시계는 추억을 떠오르게 한다. 『밀정』에서 떠오르는 사물 역시 사진과 시계다. 사진은 ‘Tragic Flaw’다. 사진을 찍지 않았다면? 그리고 연계순이 사진을 찍어 달라고 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작전이 원활하게 진행되었을 지 모른다. 시계도 의미가 있다. 김장옥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시계, 정채산이 이정출의 마음을 돌리게 한 시계. 중의적 상징이 시계에 담겨 있다. 시계는 여러 장면에서 등장한다. 작전을 시작하기 전에 시계를 맞추는 장면을 여러 영화에서 볼 수 있다. 모두 같은 시각, 같은 방향으로 가야 하지만, 다른 시각을 향해 달려 가는 ‘밀정’이 있기 마련이다. 조회령은 자기만의 시각으로 향한다.

그러나 사진과 시계는 추억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다. 추억은 우리의 현재와 만난다. 이처럼 과거의 독립 운동은 과거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의 우리와 만나야 한다.

또 하나 골동품이 있다. 이정출과 김우진의 첫 만남을 이어 주고, 공동의 목표로 그들을 연결해 주는 것.

 

카메오 이상의 카메오

박희순님과 이병헌님이 카메오로 출연한다. 특이하게도 분량으로는 카메오 이상이다. 분량뿐만이 아니다. 맥락 상으로 그들의 출연은 중요하다. 특히 『작전』, 『용의자』, 『맨발의 꿈』을 통해 엄청난 연기를 보여 준 박희순님은 첫 장면부터 관객의 집중력을 모으는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Link 3. ‘용의자’]

 

일본인 배우들의 활약

히가시 역의 츠루미 신고님, 『곡성』에서 외지인 역을 맡은 쿠니무라 준님. 그들의 활약이 돋보였다.

 

[Link 4. ‘곡성’]

 

아쉬운

아쉬운 점이 한 가지 있다. 이정출이 마음을 바꾼 것. 정채산과의 만남도 있고, 김우진과의 우정도 있다. 경부로서의 지위를 버리고 위험을 무릅써야 할 이유로 충분한지는 모르겠다. 극 중 인물의 성장, 혹은 변모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친구

내가 만약 이정출이었다면? 내가 만약 김우진이었다면? 과연 어떤 선택을 했을지 궁금하다. 용기 있게 나설 수 있었을까?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시대의 자유와 평화를 감사하게 생각해야 하는 이유다. 히가시가 말하는 ‘친구’도, 정채산이 말하는 친구도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친구는 아니다. 서로를 속고 속이며 ‘작전’과 ‘임무’를 완수해야 하는 그들의 대결 속에서 승리를 쟁취해 주셨음에 감사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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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Chris Choi

September 10, 2016 at 10:22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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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Respon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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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3 『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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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 [Link 3. ‘밀정’] […]

  5. […] [Link 2. ‘밀정’] […]

    반칙왕 | Chris Choi

    March 29, 2019 at 1:55 am

  6. […] #11 『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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