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is Choi

목욕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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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탕 하면 떠오르는 장면들이 많다. 하나의 단어가 풍성한 추억이 된다는 게 행복이다.

 

외할아버지와 목욕탕

초등학교 겨울 방학 마지막 날은 어김 없이 외갓집에서 보내곤 했다. 그리고 잊지 않고 외할아버지와 시골의 목욕탕에서 따뜻한 저녁을 보냈다. 외할아버지와 뜨끈한 탕 안에서 몸을 담그고 있는 동안에, 내 머리 속은 온통 밀린 방학 숙제 걱정이었다. 집에 돌아가서 어떻게 숙제를 마칠까? 마칠 수 있을까? 그 순간은 따뜻한 마음과 불안한 마음이 함께였다.

지금 돌아보면 모두 아름다운 추억이다. 그 때로 돌아갈 수는 없다. 하지만 아들과의 시간, 그리고 언젠가 다가올 손주와의 시간도 남아 있음에 안도한다.

 

여탕

명절에 가끔씩 어릴 적 다니던 동네 목욕탕에 간다. 몇 살까지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초등학교 저학년 때도 엄마와 여탕에 갔던 기억이 난다. 같은 반 친구를 만난 적은 다행이 없었다. 요즘은 세 살만 지나도 여탕에 들어갈 수 없다.

목욕탕의 모습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큰 차이가 없다. 다만 탕의 크기가 내 눈엔 언젠가부터 참 작게 느껴진다.

 

눈과 목욕탕

대학 시절이었다. 어느 토요일 새벽, 첫 눈이 왔다. 그 날 밤은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느라 밤을 꼬박 샜다. 첫 눈에 첫 발자국을 남기며 목욕탕에 갔다. 그냥 가고 싶었다. 입김을 내며 간 목욕탕에서 따뜻하게 몸을 데웠다. 그런 느낌이 난 좋다.

 

군대와 목욕탕

군대에서 좋았던 시간을 떠올리기가 쉽지 않지만, 그 중 하나를 고르라면 목욕이다. 한겨울 늦은 밤, 따뜻한 탕 안에 들어가는 즐거움은 상상 이상이다. 군에서 유류를 담당한 덕에 목욕탕과 연관이 많았고,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더 오래 탕 안에 몸을 담글 수 있었다.

지금은 공중 목욕탕에서 언제든 마음대로 그 따뜻함을 즐길 수 있다. 이런 자유의 감사함을 느끼는 것은 물론 공기의 소중함을 느끼는 것과 같은 수준의 어려움이다.

 

아이와 목욕탕

아이와 가끔 목욕탕에 간다. 목욕탕 가는 일은 아이에게 즐거움이다. 내가 가기 싫어도 가야 한다. 조금의 시간과 조금의 돈으로 행복할 수 있다.

서로 등도 밀어주고, 물도 뿌려 준다. 소통의 시간이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한다. 사우나는 아직 어려운가 보다. 하지만 온탕과 냉탕은 잘 참는다. 온탕에 가만히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면 의젓하다. 나도 그랬었다. 외할아버지도 나를 보면서 의젓하다 생각하셨겠지?

목욕을 마치고 바나나 우유도 하나씩 마신다. 외할아버지와 마셨던 바나나 우유다. 허나 시대는 조금 변했다. 한 가지가 아닌, 여러 가지 바나나 우유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온탕과 냉탕이 교차되는 세상에 아들이 잘 적응해 가기를 소망한다.

 

목욕탕_Image 1.jpg

[Image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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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Chris Choi

February 6, 2017 at 2:12 am

Posted in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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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목욕탕 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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