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is Choi

82년생 김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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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아기를 출산하고 우울증을 느끼지 않는 산모는 드물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그 이유가 남편의 정성이든, 산모의 건강이든 큰 축복을 받은 것이다. 우리 아내도 우울증을 겪었다. 그 시기엔 사실 증상이 드러나지 않아 나는 느끼지 못했다. 지나고 나서 얘기해 보니 감당하기 쉽지 않았다고 한다. (다행히 둘째는 여러 모로 수월하다. 나도 정신을 좀 더 차리고 열심히 돕고 있다. 심지어 집안일이 즐겁다.)

『82년생 김지영』은 산후 우울증 – 혹은 육아 우울증 – 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아기를, 아이를 키우기 쉽지 않은 대한민국의 현실을 얘기하겠구나 짐작했다. 하지만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육아의 어려움과 저출산은 현상의 일부일 뿐임을 얘기했다. 가정과 학교, 직장까지 남아선호는 끊이지 않는다. 비뚤어진 편견은 ‘원래’적인 일이다.

 

사실 어린 김지영씨는 동생이 특별 대우를 받는다거나 그래서 부럽다는 생각을 하지도 못했다. 원래 그랬으니까.

『82년생 김지영』, Page 25

 

어린 여공들은 직장 생활이 원래 그런 알고 제대로 잠도 자고,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제대로 먹지도 못하며 일만 했다.

『82년생 김지영』, Page 35

 

주민등록번호가남자는1시작하고여자는2시작하는것을그냥 그런 줄로만 알고듯이.

『82년생 김지영』, Page 46

 

스스로 몇 가지 반성을 해 본다.

 

  • 아내의 부모님은 외국에 사신다. 내 고향이 멀어서 명절 때는 고향에 계속 있기를 원했다. 아내는 연휴가 3일이라면 5일을 내 고향에서, 1.5일을 집이든 아내의 친척집이든 가자고 했다. 난 연휴 전주나 다음주에 친척집에 가자고 했다. 정말 다행히 아내가 시집을 편하게 느낀 이후로 그런 얘기는 더 하지 않는다. ‘외국에서 오래 살아서 남녀평등을 이렇게 주장하나?’ 어이 없는 생각을 했었다.
  • 야구를 끊을 수 없었다. 야구장은 못 가니 TV 중계로라도 보겠다고 주장했다. 그 이후로 아내는 야구를 싫어하게 되었다. 왜 야구를 못 끊었을까? 물론 인생은 새옹지마다. 첫째 아이를 데리고 종종 야구를 보러 간다. 그 시간에 아내는 여유로운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결론이 무섭다. 사회는 결코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함께 노력하지 않으면.

 

아무리 괜찮은 사람이라도 육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여직원은 여러 가지로 곤란한 법이다. 후임은 미혼으로 알아봐야겠다.

『82년생 김지영』, Page 175

 

인상 깊었던 한 가지는, 마치 논문을 쓰듯 소설에 주석이 달려 있다. 주석을 볼 때마다 이 책은 소설의 양식을 빌린 다큐멘터리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내가 읽으면 마음 아플 것 같아 당분간은 이 책을 권하기 어려울 것 같다.

 

시대 모든 지영씨를 위하여

교보문고의 ‘365 인생학교’를 통해 조남주 작가님을 만날 수 있었다. 좀 더 깊은 작품 이야기와 조남주 작가님의 일상에 대해서 들어볼 수 있어 좋았다.

 

대학 입학 전에는 책과 영화를 충분히 접하지 못했습니다. 뽑아도 뽑아도 새로운 책이 계속 나오는 도서관이 좋아 몇 달은 열심히 책만 읽었습니다. 학교 곳곳에서 영화도 볼 수 있었습니다. 새로운 차원을 통과해 다른 사람이 되는 경험이었습니다.

여대 출신으로 어린 나이에 신입으로 일하며 혼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원래 사회 생활이란 게 이런 건가 보다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 때는 노조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도 미처 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언니로서 후배들의 어려움을 막아 주지 못했던 아쉬움은 남습니다.

작가 시절에는 객관적이고 공정한 이야기를 담고 싶었습니다. 소설은 왜곡이 아니니 편했습니다. 그런데 자기 삶을 작품에 투영하는 독자들을 만나기 시작했습니다. 책을 읽기 전과 후의 한 사람의 긴 인생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이 가볍지 않게 느껴졌습니다.

‘지영씨들’, ‘김지영들’. 이름이 있어야 불릴 수 있으며, 무대에서 조명을 받을 수 있습니다. 삶이, 고민이, 생각이 무엇인지 논의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30대, 엄마, 경력단절 여성에 대한 이야기가 늘어나는 것이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요?

집에서는 왜 밖에서처럼 말을 하지 못할까? 가까운 곳에서부터 실천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내 가족, 직장 동료, 내 생활을 바꾸지 못한다는 자괴감은 버리고, 큰 그림으로 먼 곳부터 영향을 미치는 것도 괜찮습니다.

‘성희롱’이라는 단어는 90년대에 나왔습니다. 세상은 비록 더디지만 달라지고 있습니다. 조금씩 앞으로, 용감하게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그런 진보는 남성들의 짐도 덜게 해 줄 것입니다.

 

 

[Image 1, 2. 『82년생 김지영』과 조남주 작가님의 사인]

 

영화 82년생 김지영

손목 보호대, 아기 띠, 아기 짐 가방. 화장을 할 여유도, 힘도 없다. 밝았던 그녀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사람들은 육아 때문이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육아를 하면서 떠오른 과거의 아픈 기억들이 그늘을 깊게 한 것은 아닐까? 여성이라는 이유로 켜켜이 쌓인 시간과 아픔의 결이 공감이 된다.

그녀의 공간은 베란다와 부엌이다. 그 곳에 서면 다른 사람들은 김지영 씨의 표정을 살필 수 없다. 살피지 않는다는 게 더 맞는 표현인 듯 하다. 남편이 ‘돕지만’ 벅차기만 하다.

 

여자가 피해 다녀야지 피하면  피한 사람 잘못이야.”

 

다른 사람도 아닌 아버지의 이 말은 가슴을 찌른다.

 

김지영 씨는 1982 4 1, 서울의 산부인과 병원에서 50센티미터, 몸무게 2.9킬로그램으로 태어났다.

 

왜 마지막 장면을 ‘82년의 하루로 선택했을까? 김지영 씨가 태어났을 때, 정지원 양이 태어났을 때를 김지영 씨와 엄마는 함께 회상한다. 탄생의 순간은 누구에게나 소중한 일이니까. 청계천 방직 공장에서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고생했던 엄마가 함께라 다행이다. 김지영 씨가 갖고 싶었던 만년필에 이름을 새겨 누나에게 선물하는 남동생의 마음 씀씀이도 고맙다.

남의 일이라 생각지 마시라. 과일 가게 아저씨의 갓 취업한 딸의 미래일 수도 있다. ‘노 키즈 존’을 반강요하는 젊은 남녀의 미래일 수 있다. 우리 사회를 함께 바꾸지 않으면 말이다.

원작 소설과 영화에 차이가 몇 가지 있다. 가장 큰 차이는 엔딩. 영화가 해피 엔딩으로 끝나서 다행이다. 공원에서 ‘맘충’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 자리를 피하고 말지만, 치료를 받기 시작하고서는 정당하게 항의한다. 노을을 바라보는 마음도 좋아진 듯 하다.

 

  • 김지영 씨의 남편 정대연 씨는 소설에서는 매일 늦게까지 일하고, 주말에도 하루 정도는 출근하는 직장인이다. 영화에서는 되도록 일찍 퇴근해서 딸의 목욕을 돕는 가정적인 아빠다.
  • 소설에서는 명절에 시댁에서 모두 늦잠을 잔다. 영화에서는 새벽에 시어머니보다 늦게 일어나 핀잔을 듣는다. 영화와 달리 소설에서는 시어머니가 친정에 온 시누이를 위해 상을 내어오라고 김지영 씨를 구박하는 장면은 없다. 영화와 달리 소설에서는 김지영 씨의 빙의에 놀란 시아버지가 김지영 씨를 꾸짖는다.
  • 영화에서는 김지영 씨가 술을 잘 마시지 못한다.

 

82년생 김지영_Image 3.jpg

[Image 3]

Written by Chris Choi

April 2, 2017 at 1:58 pm

Posted in Litera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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