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is Choi's Blog

Archive for the ‘Law’ Category

사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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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신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말한다. 사법부의 공정한 판단을 위해서는.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아니지 않는가?

사법부가 공정한 판단을 위해 최선을 다할 때 국민이 신뢰로 답하는 것 아닌가?

못 배운 내 생각엔 그렇다. 아니면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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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Chris Choi

September 11, 2018 at 12:31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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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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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수 의견 절대 무시하지 마라!

 

#2

두 명의 헌법재판관이 ‘성실한 직책수행 의무’를 언급했다. 박근혜씨는 성실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이 탄핵 심판 인용의 이유는 되지 못했다.

 

#3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시간을 조작했다. 위증이 넘쳤다. 실질적인 주체가 누구인지 나는 알 수 없다. 다만, 만약 지금 밝혀지고 있는 사실이 탄핵 전에 알려졌다면?

Written by Chris Choi

April 2, 2018 at 12:03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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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신성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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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식 교수님의 문체가 참 좋다. 글도 잘 쓰시고, 말씀도 잘 하시는 드문 분이다.

『불멸의 신성가족』을 읽고 나도 모르게 움츠려 들었다. 과도한 해석일 수 있겠지만, 법은 나 같은 평범한 개인을 위해 존재하는 것 같지 않았다. 그러니 ‘법’ 근처에 – 표현이 참 그렇다 – 가지 말아야지, 자칫 敗家亡身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Image 1, 2]

Written by Chris Choi

February 14, 2018 at 12:36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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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이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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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의 칼럼을 읽으며 좋아하게 된 두 분이 있다. 중앙일보-지금은 JTBC의 보도국장이다-의 권석천 기자님, 그리고 서민 교수님이다.

 

[Link 1. ‘내가 좋아하는 조중경]

 

서민 교수님은 강연을 통해 만날 기회가 있었지만, 권석천 기자님은 좀처럼 뵙기가 어려웠다. 마침 신간이 나와 권석천 기자님의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 있었다. 그의 신간은 『대법원, 이의 있습니다』. 제목부터 마음에 든다. 질문을 하고, 이의를 제기하고, 탐사를 하는 것이 언론의 본질임을 선언하는 것 같아서이다.

 

대법원, 이의 있습니다_Image 1.jpg

[Image 1. 권석천 기자님의 저서들]

 

여러 우려에도 내밀한 사정을 전하기로 것은 정의의 자유 시장이 열리길 바라기 때문이다. 누구도 정의를 독점할 없다. 법원이 판결한 이상 결론이 어떠하든 따라야 한다는 신화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이제는 판사들도 정의를 선언하는 그쳐서는 된다. 그것이 정의인지 설명하고 논증해야 한다.

『정의를 부탁해』, Page 6, 권석천

 

[Link 2. ‘권석천, 시시각각, 정의를 부탁해]

 

어쩌면 일반인에게는 눈에 들어 오지도 않는 한 두 줄 기사일 수도 있는 이야기다. 하지만 법은 국민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책을 쓰셨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출간을 기념해 열린 강연을 통해 권석천 국장님의 이야기를 들어 봤다.

 

신문과 방송

중앙일보에서 크게 힘들었던 점은 없었습니다. 그저 글을 쓰는 일 자체가 힘든 일이었습니다. 누구는 서너 시간이면 칼럼을 쓰지만, 개인적으로는 어렵게 글을 쓰는 타입입니다. 꼬박 이틀 간 글을 쓰지만, 또 계속 고쳤습니다. 글이 실린 다음에도 또 고쳤습니다. 항상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방송은 신문과 전혀 다릅니다. 신문은 혼자 할 수 있는 영역이 많지만, 방송은 철저히 협업입니다. 새로 배우지 않으면 할 수 없습니다.

 

대법원, 이의 있습니다_Image 2.jpg

[Image 2. 권석천 기자님 강연회]

 

대법원, 이의 있습니다!

2005년에서 2011년까지의 이용훈 대법원장을 따라간 논픽션입니다. 2009년과 2010년에 중앙일보 법조팀장을 맡으면서 자괴감을 느꼈습니다. 편향 판결 논란과 대법관의 재판 관여 등을 취재하면서 틀에 맞춰 기사를 썼습니다. 관성으로 쓰다 보니 왜 갈등이 일어났는지, 무엇이 문제인지를 밝히지 못했습니다.

2012년 논설 위원 시절에 독수리 5형제에 대해 책을 쓰고 싶어 박시환 대법관을 찾아갔습니다. 성사 되지 않았고, 한 동안 잊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이용훈 코트에 대해 쓰는 것으로 방향을 바꾸어 이용훈 대법원장과 대법관들의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그들의 첫 반응은 ‘감당할 수 있을까?’였습니다. 이야기를 들으며 6년간 겪었던 일종의 고통, 분개, 감정을 느꼈습니다. 책을 보시고는 후련하다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재판 관여, 편향 판결, 탈세 논란 든 각자 회한으로 가슴에 남은 사건 하나씩은 있었습니다. 거리감을 확보하고 들으며 객관적으로 쓰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대법원의 판결이 나오는 과정을 왜 비공개로 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왜 일까요? 항상 논리적인 논거들을 갖고 판결을 내리는 것일까요? 논리적이지 않은 힘의 개입은 전혀 없을까요?

이용훈 코트의 개혁은 쉽지 않았습니다. 방향 자체는 틀리지 않았지만 방법은 다소 구식이었습니다. 통계 제시 등으로 인해 판사들이 반발하기도 했습니다. 방법이 전부일 때가 있습니다. 특히 개혁은 방법이 개혁적이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노무현 전대통령 덕분에 서오남을 탈피한 다양성을 추구할 수 있었습니다. 여성 대법관, 40대 고법 부장, 박시환의 컴백 등 파격이 있었습니다. 다양성의 핵심은 비주류성입니다. 비주류성은 다른 의견을 내게 합니다. 진보성의 시작입니다. 이후로는 다시 비주류가 적어지고 다양성이 쉽지 않은 구조로 바뀌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PD 수첩의 광우병 보도 이후 보수와 진부가 매우 격렬하게 대립했습니다. 보수매체는 MBC를 공격하고, 징계 등으로 인해 언론은 위축되었습니다. 탐사 보도, 고발 프로그램도 축소되었습니다. 언론 보도에는 과장이 일부 섞일 수밖에 없고, 그것을 인정해야 언론의 자유가 보장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위축될 수밖에 없습니다. 언론은 자기 검열에 빠져버렸습니다.

 

비주류성

기자는 현장에 가야 함을 세월호 때 느꼈습니다. 오보 등으로 폭력을 당하는 일도 있어 자괴감을 느꼈지만, 저 분들 입장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가운데 분열을 느꼈습니다. 기자는 현장에서 분열을 느껴야 합니다. 전수안 대법관은 소년범 재판을 하면서 자기 분열을 느꼈습니다. 판사들은 법정에서 느껴야 합니다. 관심을 가져야 희망이 있습니다.

판사들은 일이 너무 많아 외부 접촉이 적습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책을 읽기도 어렵고 외부의 사람들도 만나지 못합니다. 재판부 성향에 따라 판결이 갈리게 됩니다. 바쁘니까 판례와 사실 관계에 맞춰 납품하듯 찍어내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쉽지 않은 과제입니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신뢰 회복이 어려울 것입니다.

 

글쓰기

내가 어떤 글을 좋아하는가 생각해 보면 글이 달라집니다. 어떻게 다르게 쓸 것인지 고민합니다.

 

신문 칼럼도 영화, 페이스북, 무한도전, 히든싱어와 경쟁해야 하는 시대라는 생각으로 소설체, 독백체, 대화체, 고어체로 글을 세웠다 부쉈다를 거듭했습니다.

『정의를 부탁해』, Page 6, 권석천

 

그래야 읽습니다. 어떻게 제대로, 다르게 전달할 수 있을지 형식을 많이 고민합니다.

판사도 그렇지만 기자도 현장에 가야 합니다. 그래야 뭐라도 하나 배우고 달라질 수 있습니다.

 

대법원, 이의 있습니다_Image 3.png

[Image 3]

Written by Chris Choi

September 7, 2017 at 11:49 p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