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is Choi

Archive for the ‘Movie’ Category

Toy Story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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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은 영원한 주제다. 『Toy Story』 시리즈만큼 우정을 깊이 다룬 작품도 드물 것이다. 3편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만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9년만에 만날 수 있게 되어 반가웠다.

 

Toy Story 4_Image 2.jpg

[Image 1. 출처: Pixar Twitter]

 

『Toy Story 4』는 특이하게 단편 애니메이션 없이 바로 시작된다.

 

결핍, ‘Second-chance’ Antiques

Gabby Gabby의 Voice box는 고장 났다. Duke Caboom은 광고처럼 묘기를 부리지 못한다. 결핍이다. 그 결핍은 우정의 결핍으로 이어진다. 장난감 친구들은 결코 채워줄 수 없는 결핍이다. 결핍을 감추기 위해 Duke Caboom은 과장된 동작을 취하지만, 자존감을 회복하지 못한다.

 

Bo Peep, Woody

Bo Peep이 변했다. 옷만 변한 것이 아니다. 마음가짐이 변했다. 장난감이라고 꼭 주인에게 종속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며, 독립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Andy의 영원한 친구로 남기를 원해왔던 Woody – 와 그 마음에 공감했던 나 – 는 도무지 이해하지 못한다.

 

추억이여, 안녕!

영화가 마지막에 다다랐다. 갑자기 눈물이 흘렀다. 내가 외로웠던 순간 함께 했던 시리즈가 이제는 막을 내린다. 다음을 기약할 수 없음이 슬펐다. 영화는 나에게 추억이다. 인형 친구들아, 그 동안 고마웠어!

 

배우들

  • 변함 없는 목소리로 4편까지 팬들을 만나준 Tom Hanks (Woody), Tim Allen (Buzz Lightyear).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 『Get Out』과 『Us』의 Jordan Peele 감독님이 Bunny 역할로, Keanu Reeves 배우님이 Duke Caboom으로 열연해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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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Chris Choi

June 26, 2019 at 12:57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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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ck Mirr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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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우리의 삶을 왜곡할 수 있는 것들. 화면들과 눈. 왜곡을 훌륭하게 고찰하는 “Black Mirror”

 

1-1. National Anthem

돼지와 몸을 섞어야 하는 상황. 여론은 롤러코스터를 탄다. 그 가운데 합리성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여론이 언론을 움직이는 것인지, 언론이 여론을 움직이는 것인지 알 수 없다. 하나의 눈이 비밀을 유출한다. 세상에 비밀은 없다.

나라면 어떻게 판단을 했을까? 여론에 기댔을까? 보좌관들의 판단에 기댔을까? 공주를 살리는 것과 내 자존심을 지키는 것, 어느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을까? 세상에는 어려운 문제들이 넘쳐난다.

 

1-2. 15 Million Merits

지구가 멸망해 한 곳에 머물러야 한다면 어떤 모습일까? “Mad Max: Fury Road” 같은 모습일까?

 

[Link 1. ‘Mad Max: Fury Road”]

 

끊임 없이 동력을 만들어 내야 한다. 사람들이 쉴 새 없이 자전거 페달을 돌려서. 모든 활동은 숫자로 표현된다. 치약을 짜는 것도, 배양된 사과를 먹는 것도. 끔찍하다. 지옥을 탈출하려면 오디션을 통과해야 한다. 오디션을 보기 위해서는 1,500만 포인트가 필요하다. ‘꿈’을 위해서는 절약하며 달려야 한다. 오직 오디션의 기회를 위해.

그것이 끝이 아니다. 오디션을 통과하면 어디로 향하는지 알 수 없다. 화면을 통해 짐작해 볼 뿐. 이것은 현실과 닮아 있다. 천국일지 지옥일지 가 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다. 또 한 가지 공통점은 소수의 사람들이 자기만의 기준으로 판단한다. 그 기준이 무엇인지 대중은 알 수 없다.

 

1-3. The Entire History

인간에게 망각이 없어서는 안 된다. 모든 것을 제대로, 혹은 적절히 기억하고 추억하는 것은 능력 밖의 일이기 때문이다. 눈에 담았던 모든 것을 기억하고자 하는 것은 지나친 욕심이다. 눈은 더 이상 마음이 창이 될 수 없다. 기억의 수단으로 전락한다. 기억은 의심과 확증을 낳을 뿐이다. Grain은 해킹의 대상이 된다. 내 눈이 보는 것이 객관이며 사실일 수 있을까?

마지막에 Liam이 눈에 붙어 있는 Grain을 고통스럽게 떼어 내는 장면은 통쾌하다.

 

2-1. Be Right Back

떠나 보낸 사람을 언젠가는 잊어야 한다. 언제까지나 붙들고 있을 수는 없다. 기술이 죽은 사람을 다시 살려 낸다. 물론 완전한 모습, 완전한 인격은 아니다. 도플갱어를 꿈꾸지만 작은 차이는 더 큰 실망으로 이어진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슬픔을 이겨내기 위해 그것을 원한다. 구름 저편에 있을 사람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조금씩 엷어져야 하지만, 구름 저편에서 그 사람과 닮은 이를 데려 오는 일. 이미 현실에서도 시도되고 있는 일이라 더욱 오싹해진다.

옛날 사진을 다락방에 두듯, 언젠가 Social Media의 활동 내역을 다락방에 두는 시대가 머지 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2-2. White Bear

누군가가 길거리에서 어려움에 처해 있어도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들이댈 뿐, 도울 생각을 하지 않는다. 찍어 대는 것이 뭐 그리 중요하다고. 사람들이 동물들을 구경하는 곳이 동물원이라면, 사람들이 사람을 구경하는 곳은 ‘사람원’이라고 불러야 할까? 참 알 수 없다. 적어도 죄를 묻는 방식으로서는 완전히 틀렸다. 물론 죄를 용서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죄를 용서해야 하는 지도 잘 모르겠지만.

 

2-3. The Waldo Moment

정치의 더러운 속성은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정치 풍자가 정치로 들어가야 하는 정도라면? 참 더럽다.

 

2-4. White Christmas

“Be Right Back”과 유사한 Episode. 나와 흡사하게 닮은 나는 나인가, 아닌가? 맞다, 아니다를 떠나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나와 닮은 나를 만드는 것은 죄악에 가깝다.

사람이 사람을 차단한다. 큰 범죄는 막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화까지 막아버리는 부작용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3-1. Shut Up and Dance

허술한 약자는 당할 수밖에 없다. Malware는 하나의 예시일 뿐이다. 법, 의료, 금융 등 약자를 힘들게 하는 세상의 기제는 하나 둘이 아니다. 약자가 보는 세상은 지옥이다.

Written by Chris Choi

June 19, 2019 at 12:21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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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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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IDE. 세상을 가르는 기준들이 있다. 부, 학력, 명예, 그리고… 그 기준들은 수평선들을 그린다. 선과 선은 아주 가끔 한 두 개의 점으로 교차할 때가 있지만, 하나의 선으로 수렴하는 일은 없다. 나는 나와 다른 선을 본 적도 없다! TV 뉴스에서 간혹 선의 대략적인 모습을 설명해 주지만, 나는 짐작도 할 수 없다.

‘DIGITAL DIVIDE’. 한 집에서는 와이파이 신호를 잡으려고 화장실 구석 자리까지 손을 내민다. 다른 한 집에서는 무전기로 대화를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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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1 출처: CJ Entertainment Facebook]

 

영화 『기생충』은 선과 선이 만나지는 못하더라도, 어떻게 최대한 거리를 좁힐 수 있을 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듯 하다. 구경도 할 수 없는 서로를 전제한 나로서는 ‘멀고 먼 둘이 가까워진다면’이라는 상상이 신기할 따름이다.

 

수직, 기제

수평에도 상하가 있다. 기택 (송강호 배우님) 의 가족은 아래 반지하에서, 박사장 (이선균 배우님) 의 가족은 위 대저택에서 산다. 박사장의 가족은 그대로 있지만, 기택의 가족은 아래에서 위로, 다시 위에서 아래로 이동한다. 올라가는 길은 즐겁지만, 내려가는 길은 비참하다. 다른 둘이 만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위의 사람들이 아래로 내려가는 법은 없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물이 넘치면 피해는 고스란히 아래의 몫이다. 위에서는 억수 같은 비에도 인디언 텐트 안에서 쉬면 되지만, 아래에서는 위험을 각오하고 얼마 되지 않는 귀중품을 꺼내 오기 바쁘다. 그 와중에도 아이들은 플라스틱 뗏목을 타고 논다.

이런 구도에서 각자의 기제가 있다. 위에서는 아래에서 선을 넘어 오지 않기를 바란다. 박사장과 연교 (조여정 배우님) 에게 그 선은 냄새다. 그들은 냄새를 공유하지 않는다. 냄새를 공유하기 위해서는 거리가 가까워야 한다. 집 안의 오래된 냄새를 공유해야 한다. 그 냄새가 옷을 통해 다른 사람들이 맡을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은 냄새를 공유하지 않는다.

아래에서는 기회를 포착하면 위에서 무언가를 얻기를 바란다. 물론 위의 것들을 차지하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기우 (최우식 배우님) 와 기정 (박소담 배우님) 이 대학생인 척, 유학생인 척 능청스럽게 거짓말을 하는 것은 그들의 기제다. 마치 기생충이 숙주를 속이고 유혹해 숙주의 몸에 들어가는 것처럼. 숙주는 자기 몸 속에 기생충이 있는지도 모를 때가 있다. ‘기’생과 ‘공’생의 차이는 무엇인가?

기택은 반지하 어두운 방에서 기생하는 곱등이를 쫓아 내려고 방역 가스를 피하지 않는다. 자칫 숙주까지 죽을 수 있음에도.

 

View

집을 구할 때도, 호텔을 예약할 때도 ‘뷰’는 중요하다. 멋진 풍경만이 뷰의 전부는 아니다. 취객의 소변까지 봐야 하는 뷰, 아름다운 조경만을 보면 되는 뷰.

 

계획

계획이 뭐야?” (충숙)

아들아, 너는 계획이 있구나” (기택)

계획에 없던 ” (기우)

아버지, 계획이 뭐에요?” (기우)

무계획.” (기택)

 

시작은 우연이다. 하지만 그 다음부터 기택 가족의 연이은 결정들은 계획에 따른 것이다. 그러다 결정적인 순간에 기택은 무계획을 택한다. 그 때부터 기택은 무기력해 보인다. 기우는 무계획이 불편하고 받아들일 수 없다. 기우는 위태로운 수재의 순간에 집에서 수석을 들고 나온다.

다시 보면 계획대로 사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박사장은 세상을 떠나고, 민혁 (박서준 배우님) 조차도 다혜와 사귀겠다는 결심을 지키지 못한다.

 

바뀌지 않는 질서

질서는 바뀌지 않는다. 모스 부호는 아래 사람들끼리만 통한다. 오근세 (박명훈 배우님) 는 충숙과 기정만을 찌른다. 윗 사람들은 하나도 찌르지 않는다. 박사장 가족이 나간 자리를 또 다른 세입자가 채운다. 오근세 (박명훈 배우님) 의 자리를 기태가 채운다.

 

봉테일

『살인의 추억』의 인상적인 장면 하나. 박두만 (송강호 배우님) 이 취조를 할 때 보일러공이 보일러를 만진다. 충숙과 기우가 기정이 있는 납골당에 서 있는데 사람들이 청소를 하려고 나선다.

JTBC의 서복현 기자님, 심수미 기자님이 현실성을 강화해 주셨다. JTBC 로고를 그대로 사용했다.

 

가족 가족

가족과 가족의 대결이라는 측면에서 Jordan Peele 감독의 『Us』와 비교해 보는 것도 흥미롭다.

 

[Link 1. ‘Us]

 

  • 네 명과 네 명. 아버지, 어머니, 아들, 딸. 중간 즈음 어디에 선을 두고 접으면 대칭이 될 것 같다. 기택 가족의 아들인 기우와 박사장 가족의 딸인 다혜가 사랑을 한다. 기택 가족의 딸인 기정은 박사장 가족의 아들인 다송에게 미술을 가르친다. 기택 가족의 엄마인 충숙이, 박사장 가족에서는 박사장이 가정의 주도권을 잡고 있다. 물론 『Us』는 완전 대칭처럼 보인다. 모습은 그렇지만 속성은 그렇지 않다.
  • 오리지널이 있어야 카피가 있다. 마치 숙주가 있어야 기생충이 있듯이.
  • 단, 기생충은 전복을 꿈꾸지 않으나, 카피는 전복을 꿈꾼다.

 

불편한 마음

영화를 보고 난 후에 불편한 마음은 없었다. 오히려 냉혹한 현실을 조금은 부드럽게 표현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빈부 격차와 양 측의 기제가 새로울 것도 없었다. 오히려 마음이 불편했다면 우리 사회의 양극화에 대해 생각해 볼 계기가 되었을 수도 있겠다.

다만 마지막으로 한 가지 질문을 던지고 싶다. 과연 누가 숙주이며, 누가 기생충인가? 부가 숙주와 기생충의 기준이라고, 사람이 숙주가 되고 동시에 기생충이 되는 사회는 필연이라고 말하지 말자.

 

감독과 배우들

  • 봉준호 X 송강호. 칸 영화제 수상.
  • 봉준호 감독님은 초기부터 송강호 배우님과 최우식 배우님을 염두에 두었다고 한다. 만약 내가 감독이 된다면 어떤 배우를 우선 염두에 둘까 생각해 봤다. 송강호 배우님, 박원상 배우님, 박희순 배우님, 이성민 배우님, 박소담 배우님, 정유미 배우님, 김원해 배우님, 오정세 배우님, 전국환 배우님, 정해균 배우님, 이도경 배우님이 떠오른다.
  • 박소담 배우님의 연기에 매번 감동하지 않을 수 없다. ‘능청’의 높은 능력치를 이번 영화를 통해 키우신 듯 하다. 한 이 삼년은 반지하에서 합숙을 한 것처럼 너무나 자연스럽다.
  • 지금까지 활짝 드러나지 않았던 최우식 배우님의 진면목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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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2 출처: CJ Entertainment Facebook]

Written by Chris Choi

June 3, 2019 at 1:16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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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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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배우가 단 한 작품으로 내게 확 들어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송새벽 배우님과 드라마 『빙의』가 나에게 그랬다. 게다가 송새벽 배우님 + 고준희 배우님의 조합은 매력적이었다!

선과 악은 명확히 구분되는 것인가? 그러기를 바라지만 그럴 수는 없다. 그래서 세상이 어렵다. 누구를 따르고 누구를 피해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다.

Written by Chris Choi

April 30, 2019 at 12:07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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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so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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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은 (아이유) 배우님의 좀 더 다양한 색깔을 볼 수 있었던 “Persona”. 오직 이지은을 위한 드라마다.

 

[Link 1. ‘Netflix-Netflix Originals’]

 

단 네 편의 짧은 에피스도를 보고 무언가 판단하기는 이를 수도 있겠지만, 다음 시리즈가 – 예정되어 있는지 모르겠지만 – 그렇게 기대 되지 않는다. 기묘함은 메시지가 명확할 때 빛난다. 그저 기묘하기만 하면 이야기가 더 나아가기 어렵다.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겠다.

두 번째 에피소드인 “썩지 않게 아주 오래”에서 남자 친구의 말을 하나씩 딱딱 반박하는 장면이 통쾌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그 말이 끝났을 때 남자 친구는 어안이 벙벙했어야 했다.

Written by Chris Choi

April 22, 2019 at 2:53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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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Killing of the Sacred De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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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가정이다. 남 부러울 것이 없는 조건의 가정임에도 대화가 건조하다. 한 편으로는 부럽지만, 또 다른 한 편으로는 부럽지 않은 가정이다. (내 인생의 결론이지만, 절반의 부러움은 부러움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정의

정의란 무엇일까? 공평이란 무엇일까? 잘 모르겠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가 공평한 것일까? 그렇다면 돌아가신 아버지의 목숨값을 한 사람의 목숨으로 대신하는 것이 정의일까? 모르겠다.

Martin (Barry Keoghan) 에게는 그것이 정의에 가까운 일이다. 집으로 초대한 사람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는 것. 겨드랑이 털을 보여준 사람의 자녀들에게 자신의 겨드랑이 털을 보여주는 것.

 

시계

 

아버지 중심

영화는 아버지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희생자를 결정하는 것도 아버지의 몫이다. 죄를 지은 것은 아버지이지만, 아버지는 희생되지 않는다. 연좌제처럼 불합리한 구조다.

 

?

의아했다. 한 사람이 죽어야 함을 모두 안다면, 왜 자신만 살려고 들까? 왜 엄마는 자녀들을 위해 희생하지 않을까? 아니, 왜 엄마가 자녀들을 위해 희생해야 한다는 생각을 나는 먼저 할까? 아빠 때문에 한 사람이, 아니면 전부가 죽어야 할 상황에 아빠를 원망하기는 커녕 목숨을 구걸할까?

 

질문투성이의 영화라서 좋은 영화다.

 

Yorgos Lanthimos 감독

『The Lobster』와 『Killing of the Sacred Deer』의 공통점.

 

[Link 1. ‘The Lobster’]

 

  • 동물: 랍스터, 토끼
  • Colin Farrell

Written by Chris Choi

April 19, 2019 at 1:05 am

Lob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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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혼자일까? 아니면 함께일까? 말이 되지 않는 질문이다. 때로는 혼자이면서, 때로는 함께다. 결혼도 마찬가지다. 누구는 결혼을 선택하고, 누구는 (결혼 없이) 동거를 선택하며, 누구는 독신을 선택한다. 물론 선택의 여지가 없이 셋 중 하나를 취하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보면 선택의 문제는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결혼을 해도 Up & Down은 굉장히 크다. 결혼 하기를 잘 했다고 생각하다가도, 결혼 생활이 지긋지긋해서 당장이라도 혼자 살고 싶다고 생각한다.

이런 실존을 “Lobster”는 과장해 본다. 세 개의 세계가 있다. ‘커플 상태’라는 공식적인 ‘Certificate’를 가진 사람들이 사는 도시, Certificate는 유효 기간이 있다. 어떤 이유로 ‘싱글 상태’가 되어 다시 커플 상태가 될 때까지 45일 간의 시간이 주어지는 호텔. 그 곳을 버티지 못하고 싱글 상태로 살아 가기로 결정한 숲. 숲에서 탈출해 도시로 가더라도 Certificate, 짝, 깨끗한 손톱과 팔꿈치를 보이지 못하면 추방 당한다.

 

강요, Irony

호텔과 숲은 기묘한 공간이다. 호텔은 커플의 장점을 강요하고, 숲은 싱글의 장점을 강요한다. 세뇌 수준이다. 호텔 안에서 동물이 되지 않으려면 45일 안에 커플이 되어야 한다. 룰은 간단하다. 공통점이 있는 짝을 만나는 것. 전공이 같거나, 코피를 자주 흘리거나, 성격이 냉정한 것도 공통점이 된다. 단, 거짓으로 공통점을 만들어도 되나, 들켜서는 안 된다. 사랑하지 않아도 되나, 사랑하는 척을 잘 해야 한다.

사랑을 하라고 강요하는 곳에서는 사랑을 하지 못한다. 사랑을 하지 말라고 하는 곳에서는 사랑을 참을 수 없다. 삶의 아이러니다. 하나의 이어폰을 둘이 나눠 껴도 될 텐데, 음악을 Synchronize 한 후 각각의 이어폰을 끼고 함께 춤을 춘다.

결혼과 이혼에 대한 사람들의 고정된 시선이 있다. 사랑에 대한 시선이 아니다. 개인의 선택, 혹은 환경에 대해 3자가 관여할 바가 아니다. 관여하는 순간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는 않는 반칙을 한 것이다. 제발 신경 끄기를 바란다. 물론 이런 편견은 사랑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다.

Written by Chris Choi

April 17, 2019 at 10:39 p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