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is Choi

Archive for the ‘Movie’ Category

The Killing of the Sacred De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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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가정이다. 남 부러울 것이 없는 조건의 가정임에도 대화가 건조하다. 한 편으로는 부럽지만, 또 다른 한 편으로는 부럽지 않은 가정이다. (내 인생의 결론이지만, 절반의 부러움은 부러움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정의

정의란 무엇일까? 공평이란 무엇일까? 잘 모르겠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가 공평한 것일까? 그렇다면 돌아가신 아버지의 목숨값을 한 사람의 목숨으로 대신하는 것이 정의일까? 모르겠다.

Martin (Barry Keoghan) 에게는 그것이 정의에 가까운 일이다. 집으로 초대한 사람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는 것. 겨드랑이 털을 보여준 사람의 자녀들에게 자신의 겨드랑이 털을 보여주는 것.

 

시계

 

아버지 중심

영화는 아버지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희생자를 결정하는 것도 아버지의 몫이다. 죄를 지은 것은 아버지이지만, 아버지는 희생되지 않는다. 연좌제처럼 불합리한 구조다.

 

?

의아했다. 한 사람이 죽어야 함을 모두 안다면, 왜 자신만 살려고 들까? 왜 엄마는 자녀들을 위해 희생하지 않을까? 아니, 왜 엄마가 자녀들을 위해 희생해야 한다는 생각을 나는 먼저 할까? 아빠 때문에 한 사람이, 아니면 전부가 죽어야 할 상황에 아빠를 원망하기는 커녕 목숨을 구걸할까?

 

질문투성이의 영화라서 좋은 영화다.

 

Yorgos Lanthimos 감독

『The Lobster』와 『Killing of the Sacred Deer』의 공통점.

 

[Link 1. ‘The Lobster’]

 

  • 동물: 랍스터, 토끼
  • Colin Farr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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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Chris Choi

April 19, 2019 at 1:05 am

Lob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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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혼자일까? 아니면 함께일까? 말이 되지 않는 질문이다. 때로는 혼자이면서, 때로는 함께다. 결혼도 마찬가지다. 누구는 결혼을 선택하고, 누구는 (결혼 없이) 동거를 선택하며, 누구는 독신을 선택한다. 물론 선택의 여지가 없이 셋 중 하나를 취하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보면 선택의 문제는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결혼을 해도 Up & Down은 굉장히 크다. 결혼 하기를 잘 했다고 생각하다가도, 결혼 생활이 지긋지긋해서 당장이라도 혼자 살고 싶다고 생각한다.

이런 실존을 “Lobster”는 과장해 본다. 세 개의 세계가 있다. ‘커플 상태’라는 공식적인 ‘Certificate’를 가진 사람들이 사는 도시, Certificate는 유효 기간이 있다. 어떤 이유로 ‘싱글 상태’가 되어 다시 커플 상태가 될 때까지 45일 간의 시간이 주어지는 호텔. 그 곳을 버티지 못하고 싱글 상태로 살아 가기로 결정한 숲. 숲에서 탈출해 도시로 가더라도 Certificate, 짝, 깨끗한 손톱과 팔꿈치를 보이지 못하면 추방 당한다.

 

강요, Irony

호텔과 숲은 기묘한 공간이다. 호텔은 커플의 장점을 강요하고, 숲은 싱글의 장점을 강요한다. 세뇌 수준이다. 호텔 안에서 동물이 되지 않으려면 45일 안에 커플이 되어야 한다. 룰은 간단하다. 공통점이 있는 짝을 만나는 것. 전공이 같거나, 코피를 자주 흘리거나, 성격이 냉정한 것도 공통점이 된다. 단, 거짓으로 공통점을 만들어도 되나, 들켜서는 안 된다. 사랑하지 않아도 되나, 사랑하는 척을 잘 해야 한다.

사랑을 하라고 강요하는 곳에서는 사랑을 하지 못한다. 사랑을 하지 말라고 하는 곳에서는 사랑을 참을 수 없다. 삶의 아이러니다. 하나의 이어폰을 둘이 나눠 껴도 될 텐데, 음악을 Synchronize 한 후 각각의 이어폰을 끼고 함께 춤을 춘다.

결혼과 이혼에 대한 사람들의 고정된 시선이 있다. 사랑에 대한 시선이 아니다. 개인의 선택, 혹은 환경에 대해 3자가 관여할 바가 아니다. 관여하는 순간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는 않는 반칙을 한 것이다. 제발 신경 끄기를 바란다. 물론 이런 편견은 사랑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다.

Written by Chris Choi

April 17, 2019 at 10:39 pm

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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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t Out』의 충격 후 2년이 흘렀다. Jordan Peele 감독은 “Us”로 ‘우리’를 다시 찾아 왔다.

 

[Link 1. ‘Get Out’]

 

대칭? 같지만 같지 않은

“We’re Americans.”

 

우리는 ‘같은’ 미국인이다. 우리는 ‘같은’ 사람이다. 그들은 그렇게 외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원본과 복제는 ‘Tethered’, 연결되어 있기는 하지만 동일하지 않다. 지하의 사람들, 약자는 지상의 사람들, 강자와 동일하기를 소망하는 것일 뿐이다. 정확히 말하면 자신의 짝을 없애버림으로써 자신의 짝을 대체하고, 그럼으로써 비로소 짝이 되기 위해 공격하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인간 띠는 또 다른 억압일 수 있다.

대칭의 구조는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거울, Adelaide와 Red, 11장 11절의 11과 11, 11시 11분의 11과 11 등. 가위의 날도 대칭이다. 하지만 대칭이라고 해서 한 쪽과 다른 한 쪽이 동일한 것은 아니다. 11시와 11분은 엄연히 다른 존재다. 지상과 지하 사람들이 움직이는 모양은 비슷하지만, 자연스러움이 다르다. 빛이 다르다. 같은 땅에 살면서 이 사회의 왼쪽과 오른쪽, 위와 아래를 대칭적으로 구성한다고 해서 모두 동등한 존재는 아닌 것처럼.

 

[Video 1. ‘Us-Official Trailer’ 출처: Universal Pictures YouTube Channel]

 

각각 네 명인 가족을 리드하는 것이 엄마라는 점까지 대칭이다. 엄마가 말하고, 엄마가 지시한다.

 

United vs. Divided

공격이 시작될 때 Adelaide 가족은 하나씩 흩어진다. 복제와 1 대 1로 대결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격이 거칠어질수록 모이고 단합한다. 원본의 속성인가? 대신 Red 가족은 잡았던 손을 놓은 이후로 다시 함께 만나는 일이 없다. 복제의 속성인가?

모여야 한다. 협력해야 한다. 그게 우리 사회가 생존하는 방식이다. 심지어 넷 중의 하나가 이방인일 지라도 말이다. 나와 다른 이방인이 우리 안에 존재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협력해야 한다.

가위는 자른다. 사람을 자르고 관계를 자른다. (Adelaide는 자르지 않는다. 오히려 묶는다.)

 

Mexico

US는 ‘United States’이기도 하다. 함께지만 함께이지 않은 사회. 문제가 다른 곳에 있지 않다. 문제는 ‘우리’ 안에 있다.

Mexico로 떠나면 문제가 해결될까? 그럴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같은 생각을 한다면 계속 쫓아 올 것이다. 인간 띠가 해결책이 아닌 것처럼, 미국이 치려고 하는 국경 장벽은 해결책이 되지 않을 것이다.

 

Get Out

『Get Out』이 너무도 강렬하게 남아서일까, 애써 찾지 않아도 닮은 점이 몇 가지 보인다.

 

  • Intro 음악이 기가 막히다.
  • 달린다. 힘차게 달린다. 바로 잡아 채지 않는다. 더욱 공포스럽다.
  • SUV를 타고 이동한다. 그 길만큼은 아름답지만, 폭풍전야 같은 느낌이다.
  • 코믹이 있다. 위급한 순간에도 아빠인 Gabe는 웃음을 준다. 『Get Out』에서는 Chris의 친구인 Rod가 코믹을 담당한다.

 

Dots Connected

Jordan Peele 감독이 어릴 적에 서 있었던 뉴욕 지하철 플랫폼. ‘반대편에 나와 같은 사람이 서 있다면?’ 이런 그의 질문은 1986년 ‘Hands Across America’를 만난다. 전국에 퍼져 있는 지하 갱도를 만난다. Dots Connected! 시나리오를 쓰면서, 영화를 만들면서 Jordan Peele 감독은 얼마나 신났을까?

 

Us_Image 1.png

[Image 1]

Written by Chris Choi

April 8, 2019 at 11:57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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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박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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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주 배우님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얄밉지만 밉지 않은’ 배우다.

 

Movie

 

Drama

  • 남자친구

Written by Chris Choi

March 31, 2019 at 4:18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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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tflix vs. Cine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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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tflix가 직접 만드는 Netflix Original은 일반 영화관에서 상영하는 영화와 같은 속성을 지닐 수 없다. 좋은 TV와 사운드로 시청하는 사용자도 물론 있지만, 상당수는 모바일로 시청한다. 한 편을, 혹은 여러 편을 정주행 하는 경우도 있지만, 짧게 짧게 끊어서 보는 경우도 있다.

극장 개봉을 염두에 둔 작품이 아니라면, 대형 화면에 어울리는 Visual과는 다른 Visual, 끊어서 보아도 끊임이 없을 것 같은 응집성의 스토리를 추구하고 있을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Netflix Original을 분석해 보면 흥미롭겠다.

단, AR과 VR이 이런 차이를 무마시켜 버릴 지도 모르겠다.

Written by Chris Choi

March 25, 2019 at 8:41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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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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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이란 무엇인가? Sam이 잡고 있는 것은 과연 희망일까? 아니면 헛된 기대일까? 아니면 희망이란 게 결국 헛된 기대일 뿐인가? 그녀는 꿈을 꾼다. 해변을 거니는 꿈. 꿈조차 꿔서는 안 되는 일인가? 지구의 멸망만이 극단적 절망인 것은 아니다. 큰 병도, 사업의 실패도 극단적 절망이다. 그 순간에도 우리는 꿈을 꾸어야 하는가? 절망을 절망으로 받아 들여야 하는가? 인생의 질문이다.

선택의 문제도 있다. 누군가의 말을 신뢰하고 내 운명을 맡길 것인가? 아니면 마음이 가는 대로 선택하는 것인가? 혼란 와중에 어떤 기준을 갖고 판단할 것인가?

사랑이란 무엇인가? 거리는 사랑에 어떤 의미인가? 수백만 마일의 거리는 생과 사의 거리 이상이 아닐까? 짐작할 수도 없는 거리다.

황폐한 세상을 그리는 영화 중에 나는 『Mad Max: Fury Road』가 가장 마음에 든다. 『IO』가 그리는 모습도 역시 마음에 든다.

 

[Link 1. ‘Mad Max: Fury Road’]

 

기승전결이 공식이어야 하는가? 가끔은 이런 형식도 괜찮다.

 

[Video 1. ‘IO Official Trailer’ 출처: Netflix YouTube Channel]

Written by Chris Choi

March 19, 2019 at 12:17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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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라시: 위험한 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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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로 사람을 죽인다. 총으로 사람을 죽인다. 고문으로 사람을 죽인다.

이제는 물리력을 넘어 선다. 글로 사람을 죽인다! 영화 『찌라시: 위험한 소문』.

누가 만드는지, 누가 유포하는지, 누가 즐기는지, 누가 피해를 받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끊이지 않는 소문에 무고한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매장당한다. 그 의도가 무엇인가? 숨겨진 의도도 모른 채 그런 꼴을 즐기는 사람들은 또 무엇인가?

이미 YouTube는 Fake News가 수두룩하다. 진짜 문제는 Fake News를 분간할 수 없는 다수의 대중. 많이 돌리고, 많이 보고, 많이 읽으면 ‘사실’이 되어 버리는 사회의 속성 앞에 희생양은 앞으로도 끊이지 않을 것이다.

Written by Chris Choi

March 15, 2019 at 11:07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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