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is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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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얼굴의 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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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두 얼굴을 가지지 않은 존재가 있을까요? 정치인이 선거를 앞두고 유권자를 만나는 모습과 선거를 마친 후 유권자를 대하는 모습은 다릅니다. 기업이 사회 공헌을 하는 모습과 비리를 저지르는 모습은 다릅니다.

법원도 두 얼굴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유, 평등, 정의를 추구하는 얼굴. 그리고 조직 논리를 우선에 두는 얼굴. ‘사법 농단’은 법원의 두 얼굴을 뚜렷하게 보여준 사건이었습니다. 『대법원 이의 있습니다』 출간 후 2년만에 『두 얼굴의 법원』을 통해 권석천 논설위원님의 강연을 통해 두 얼굴을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이탄희 전 판사님도 함께였습니다.

 

[Link 1. ‘대법원 이의 있습니다]

 

올 해 읽은 책 중에 스토리가 흥미진진하지만 답답한 현실을 담은 책이 두 권 있습니다. 하나는 미국 의료 Startup인 Theranos의 무모한 도전을 다룬 『Bad Blood』입니다. 또 다른 한 권이 바로 권석천 논설위원님의 『두 얼굴의 법원』입니다. 마치 소설처럼 이야기는 잘 흘러가지만, 현실에 대한 무지를 느낄수록 마음이 불편해졌습니다.

 

[Link 2. ‘Theranos’]

 

(제가 덧붙인 내용은 이탤릭으로 표시했습니다.)

 

두 얼굴의 법원_Image 1.jpg

[Image 1]

 

사표

‘이탄희 전 판사님은 굳이 왜 사표까지 제출했을까요?’ 이야기의 출발점이었습니다. 부당한 지시를 처음 맞닥뜨렸을 때 자칫 시키는 대로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유능하게 남을 것인가, 아니면 지시를 어기고 무능하게 남을 것인가가 딜레마였습니다.

판사를 그만둔다는 것. 국민보다 판사 사회의 인정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판사들에게 평판을 위한 타협을 이겨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아마도 저를 포함한 적지 않은 사람들은 현실과 타협하는 선택을 했을 것입니다. 새로운 길을 닦는 사람들은 타협보다는 소신을 선택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회로 크게 보면 엘리트들은 또래 문화가 있습니다. 물론 그들 사이의 평판을 매우 중시합니다. 하지만 공사가 무너지고 모든 일을 집안 일로 착각하게 되는 문제가 있습니다.

판사 외의 사회 경험이 없고 세상에서 떨어져 시간을 보냅니다. 다른 사회를 배울 기회를 갖기가 쉽지 않습니다.

 

저는 회사에서가족이나식구같은 표현을 사용하면 마음이 불편해집니다. 회사 외에는 모두 사적인 일입니다. 그것이 공사 구분의 기본입니다.

 

[Link 3. ‘회사와 가족]

 

2016년 겨울의 촛불 혁명과 2017년의 탄핵은 판사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용기를 갖게 했습니다. 그런 상황이 없었다면 내부 에너지만으로는 힘들었을 것입니다. 이탄희 전 판사님이 촉매가 되어 전국 법관 회의 등 시스템도 갖춰졌습니다.

 

사람과 제도

대법원을 이끄는 사람들의 생각이 확 바뀐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관료적입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사람일까요, 제도일까요?

판사가 바뀌면 판결도 바뀔 때가 있습니다. 왜일까요? 사람의 문제입니다.

 

대부분의 판사님들은 공정한 판결을 내리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유신은 법관추천회의를 없애버렸다. 민복기에게 대법관과 모든 판사에 대한 제청권을 몰아주었다. 그는 권한으로 대법관 9명과 전국 판사 10% 갈아치우는 협조했다. 대법원장으로 재임명된 2 만이었다.

‘[이탄희의공감(公感)] 일본국사법관민복기가남긴유산’, 이탄희, 한겨레, 2019/7/28

 

거슬러 올라가 보면 유신 헌법이 있습니다. 유신 뒤에는 독재가 있고, 독재에 협력한 법조인들이 있습니다. 사람과 제도의 문제는 이렇게 얽혀 있습니다.

 

양승태 대법원장 재판

다른 이들의 직권 남용을 판결만 하던 판사들의 문제가 되었습니다. 과연 판사들이 판사들을 공정하게 판결할 수 있을까요? 재판만으로는 근원적 해결이 어려울 것입니다. 기소 대상에서 제외된 판사도 많습니다. 유무죄의 판단도 중요하지만,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고 어떻게 법원이 후속 조치를 취할 지가 어쩌면 더 중요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문제의 소지가 있는 판사들은 재판을 계속 하고 있습니다.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은 듯 합니다. 김명수 대법관이 권력과 권한을 구분하지 못해 타이밍을 놓친 것이 사실입니다. 더 늦지 않게 단호한 입장을 밝히고 조치를 취해야 할 것입니다.

양승태씨의 구속이 모든 것을 해결한 것은 아닙니다. 재판의 독립이며, 사법부 독립은 허구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해결책은?

일차적으로 국회가 가장 중요합니다. 법률로서 근원적인 변화를 이끌어야 합니다.

제도 개혁의 핵심은 ‘투명성’입니다. 국민들도, 판사들도 사법농단의 현실을 잘 알지 못했습니다. 국민이 알고 판사들이 알았다면 함부로 농단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아쉽게도 여전히 투명성은 크게 개선되고 있지 않습니다. 법원 운영에 판사 외의 사람들이 관여하는 것이 한 방법입니다. 시민, 학자, 시민 단체 등이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다양한 목소리를 내야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법원 운영을 판사들이 독점하는 것이 당연한 일은 아닙니다. 재판을 잘 하는 판사가 존경 받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재판관 탄핵에는 시효가 없습니다. 탄핵을 고려해야 합니다. 더불어 판사 이름 외우기도 의미가 있습니다. 사법 선진국들은 시민들이 판사의 이름을 외웁니다.

 

만약

만약 이탄희 판사님이 아니었다면,

만약 중간에 타협하셨다면,

만약 그를 지지하는 동료 판사들이 없었다면,

 

다행입니다.

 

두 얼굴의 법원_Image 2.jpg

[Image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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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Chris Choi

August 29, 2019 at 1:11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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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이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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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의 칼럼을 읽으며 좋아하게 된 두 분이 있다. 중앙일보-지금은 JTBC의 보도국장이다-의 권석천 기자님, 그리고 서민 교수님이다.

 

[Link 1. ‘내가 좋아하는 조중경]

 

서민 교수님은 강연을 통해 만날 기회가 있었지만, 권석천 기자님은 좀처럼 뵙기가 어려웠다. 마침 신간이 나와 권석천 기자님의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 있었다. 그의 신간은 『대법원, 이의 있습니다』. 제목부터 마음에 든다. 질문을 하고, 이의를 제기하고, 탐사를 하는 것이 언론의 본질임을 선언하는 것 같아서이다.

 

대법원, 이의 있습니다_Image 1.jpg

[Image 1. 권석천 기자님의 저서들]

 

여러 우려에도 내밀한 사정을 전하기로 것은 정의의 자유 시장이 열리길 바라기 때문이다. 누구도 정의를 독점할 없다. 법원이 판결한 이상 결론이 어떠하든 따라야 한다는 신화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이제는 판사들도 정의를 선언하는 그쳐서는 된다. 그것이 정의인지 설명하고 논증해야 한다.

『정의를 부탁해』, Page 6, 권석천

 

[Link 2. ‘권석천, 시시각각, 정의를 부탁해]

 

어쩌면 일반인에게는 눈에 들어 오지도 않는 한 두 줄 기사일 수도 있는 이야기다. 하지만 법은 국민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책을 쓰셨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출간을 기념해 열린 강연을 통해 권석천 국장님의 이야기를 들어 봤다.

 

신문과 방송

중앙일보에서 크게 힘들었던 점은 없었습니다. 그저 글을 쓰는 일 자체가 힘든 일이었습니다. 누구는 서너 시간이면 칼럼을 쓰지만, 개인적으로는 어렵게 글을 쓰는 타입입니다. 꼬박 이틀 간 글을 쓰지만, 또 계속 고쳤습니다. 글이 실린 다음에도 또 고쳤습니다. 항상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방송은 신문과 전혀 다릅니다. 신문은 혼자 할 수 있는 영역이 많지만, 방송은 철저히 협업입니다. 새로 배우지 않으면 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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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2. 권석천 기자님 강연회]

 

대법원, 이의 있습니다!

2005년에서 2011년까지의 이용훈 대법원장을 따라간 논픽션입니다. 2009년과 2010년에 중앙일보 법조팀장을 맡으면서 자괴감을 느꼈습니다. 편향 판결 논란과 대법관의 재판 관여 등을 취재하면서 틀에 맞춰 기사를 썼습니다. 관성으로 쓰다 보니 왜 갈등이 일어났는지, 무엇이 문제인지를 밝히지 못했습니다.

2012년 논설 위원 시절에 독수리 5형제에 대해 책을 쓰고 싶어 박시환 대법관을 찾아갔습니다. 성사 되지 않았고, 한 동안 잊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이용훈 코트에 대해 쓰는 것으로 방향을 바꾸어 이용훈 대법원장과 대법관들의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그들의 첫 반응은 ‘감당할 수 있을까?’였습니다. 이야기를 들으며 6년간 겪었던 일종의 고통, 분개, 감정을 느꼈습니다. 책을 보시고는 후련하다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재판 관여, 편향 판결, 탈세 논란 든 각자 회한으로 가슴에 남은 사건 하나씩은 있었습니다. 거리감을 확보하고 들으며 객관적으로 쓰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대법원의 판결이 나오는 과정을 왜 비공개로 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왜 일까요? 항상 논리적인 논거들을 갖고 판결을 내리는 것일까요? 논리적이지 않은 힘의 개입은 전혀 없을까요?

이용훈 코트의 개혁은 쉽지 않았습니다. 방향 자체는 틀리지 않았지만 방법은 다소 구식이었습니다. 통계 제시 등으로 인해 판사들이 반발하기도 했습니다. 방법이 전부일 때가 있습니다. 특히 개혁은 방법이 개혁적이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노무현 전대통령 덕분에 서오남을 탈피한 다양성을 추구할 수 있었습니다. 여성 대법관, 40대 고법 부장, 박시환의 컴백 등 파격이 있었습니다. 다양성의 핵심은 비주류성입니다. 비주류성은 다른 의견을 내게 합니다. 진보성의 시작입니다. 이후로는 다시 비주류가 적어지고 다양성이 쉽지 않은 구조로 바뀌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PD 수첩의 광우병 보도 이후 보수와 진부가 매우 격렬하게 대립했습니다. 보수매체는 MBC를 공격하고, 징계 등으로 인해 언론은 위축되었습니다. 탐사 보도, 고발 프로그램도 축소되었습니다. 언론 보도에는 과장이 일부 섞일 수밖에 없고, 그것을 인정해야 언론의 자유가 보장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위축될 수밖에 없습니다. 언론은 자기 검열에 빠져버렸습니다.

 

비주류성

기자는 현장에 가야 함을 세월호 때 느꼈습니다. 오보 등으로 폭력을 당하는 일도 있어 자괴감을 느꼈지만, 저 분들 입장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가운데 분열을 느꼈습니다. 기자는 현장에서 분열을 느껴야 합니다. 전수안 대법관은 소년범 재판을 하면서 자기 분열을 느꼈습니다. 판사들은 법정에서 느껴야 합니다. 관심을 가져야 희망이 있습니다.

판사들은 일이 너무 많아 외부 접촉이 적습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책을 읽기도 어렵고 외부의 사람들도 만나지 못합니다. 재판부 성향에 따라 판결이 갈리게 됩니다. 바쁘니까 판례와 사실 관계에 맞춰 납품하듯 찍어내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쉽지 않은 과제입니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신뢰 회복이 어려울 것입니다.

 

글쓰기

내가 어떤 글을 좋아하는가 생각해 보면 글이 달라집니다. 어떻게 다르게 쓸 것인지 고민합니다.

 

신문 칼럼도 영화, 페이스북, 무한도전, 히든싱어와 경쟁해야 하는 시대라는 생각으로 소설체, 독백체, 대화체, 고어체로 글을 세웠다 부쉈다를 거듭했습니다.

『정의를 부탁해』, Page 6, 권석천

 

그래야 읽습니다. 어떻게 제대로, 다르게 전달할 수 있을지 형식을 많이 고민합니다.

판사도 그렇지만 기자도 현장에 가야 합니다. 그래야 뭐라도 하나 배우고 달라질 수 있습니다.

 

[Link 3. ‘저자 사인’]

 

대법원, 이의 있습니다_Image 3.png

[Image 3]

Written by Chris Choi

September 7, 2017 at 11:49 pm

권석천, 시시각각, 정의를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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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희님이 ‘JTBC 뉴스룸’의 ‘앵커 브리핑’에서 가끔 언급하는 칼럼이 있다. 중앙일보 논설위원 권석천님의 시시각각. 궁금해서 칼럼 몇 개를 읽어 보았다. 신문에서도 이렇게 좋은 글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새삼스럽다.

(권석천님은 JTBC 보도국장으로 자리를 옮기셨다가, 다시 중앙일보 논설위원으로 복귀하셨다.)

 

[Video 1. ‘이쯤 가면 막 하자는 거지요?’ 출처: JTBC News YouTube Channel]

 

그의 칼럼에는 현장감이 담겨 있다. 팽목항, 쌍용차 현장 등 아픔의 현장을 그는 외면하지 않는다. 특히 그에게 세월호 사건은 변곡점이 되었다고 한다.

 

 

언론인으로서 자신에 대한 반성이 있다. 글에서도 진정성이 느껴진다.

 

나는 그렇게 사법 농단을 방조했다. 워치독(감시견)으로서 책임을 다하지 않은 적당히 알리바이를 만들어놓고 그들과 어울렸다. 그러면서 자위했다. 다른 언론사는 말도 되는 기사 써대고, 과도한 민원을 서슴지 않는데 그래도 괜찮은 사람이라고. 같은 청탁인데 과도하고 사소함에 무슨 차이가 있을까. 나는 엄밀하지 않았다. 상대평가에 중독돼 너무 쉽게 스스로 면죄부를 줬다

‘[권석천의 시시각각] 나는 왜 방조범이 되었나’, 권석천, 중앙일보, January 15, 2019

 

영화 대사 한 줄도, 소설의 한 단락도 그의 손을 거치면 훌륭한 시사 이야기가 된다.

 

 

문체도 소설, 독백, 대화, 메뉴얼 등 참 다양하다.

 

신문 칼럼도 영화, 페이스북, 무한도전, 히든싱어와 경쟁해야 하는 시대라는 생각으로 소설체, 독백체, 대화체, 고어체로 글을 세웠다 부쉈다를 거듭했습니다.

『정의를 부탁해』, Page 6, 권석천

 

그의 칼럼들은 『정의를 부탁해』라는 한 권의 책에 담겼다.

 

권석천, 시시각각, 정의를 부탁해_Image 1.jpg

[Image  1]

 

이런 연결이 나에게 공부가 된다.

 

권석천, 시시각각, 정의를 부탁해_Image 2.png

[Image 2]

 

[Link 1. ‘내가 좋아하는 조중경권석천의 시시각각]

 

나에게 중요한 하나의 독서 리스트, 영화 리스트가 된다.

 

권석천님이 언급한

 

  • 내가 우울한 건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때문이야, 바한선
  • 레미제라블
  • 미생, 윤태호
  • 법률가들, 김두식
  • 세월호, 그날의 기록
  • 역정, 리영희
  • 중쇄를 찍자
  • 타고난 거짓말쟁이들

 

권석천님이 언급한 영화

 

 

[Link 2. ‘저자 사인-권석천 기자님’]

 

[Image 3, 4]

 

그의 글들을 읽고, 내 인생의 변곡점은 무엇이었는지 생각해 본다. 그리고 나의 사회에 대한 인식은 과연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이어지는 그의 저서들이 반갑다.

 

권석천, 시시각각, 정의를 부탁해_Image 5.jpg

[Image 5]

Written by Chris Choi

November 7, 2016 at 3:34 pm

내가 좋아하는 조중경

with 3 comments

‘조중동’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속에도 ** 속 진주 같은 컨텐츠들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조중경’.

 

  • 선일보 ‘Weekly Bi’z
  • 앙일보 ‘권석천의 시시각각’
  • 향신문 ‘서민의 어쩌면’

 

[Image 1, 2, 3. 조선일보 Weekly Biz, 중앙일보 권석천의 시시각각, 경향신문 서민의 어쩌면]

[Link 1. ‘조선일보 Weekly Biz’]

[Link 2. ‘권석천, 시시각각, 정의를 부탁해’]

[Link 3. ‘서민적 글쓰기’]

Written by Chris Choi

November 1, 2016 at 11:49 p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