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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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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어 보지는 않았지만 수 백 번은 봤을 『살인의 추억』. 가장 인상 깊은 장면 중 하나는 취조실. 박형사 (송강호님) 가 조병순 (류태호님) 을 취조하고 있다. 마스크를 낀 남자가 공구함을 들고 취조실 계단을 내려온다. 그가 등장하기 전까지 그 공간은 강자와 약자만이 존재했다. 강자도, 약자도 아닌 삼자가 등장하는데, 그를 쳐다보는 사람은 약자인 조병순뿐이다. 박형사도, 서형사 (김상경님) 도, 조형사 (김뢰하님) 도 그를 거들떠보지 않는다. 강약의 균형을 깨면서도, 동시에 강약을 두드러지게 하는 장치로 느껴진다. (순전히 나의 짐작이다.) 그는 무엇에도 개입할 수 없다. 개입할 마음도 없다.

군대에서 선임이 후임을 꾸짖는다. (표현을 완곡하게 했다.) 통상 묵인, 혹은 용인되는 행위로 간주되어 간부는 아무 일 없는 듯 삼자가 된다. 그 느낌과 비슷하다. 그는 상황을 제대로 돌려놓는 데 관심이 없다. 아니, 그의 관심이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정확한 판단을 한 거다.

(조금 틀어서 보면, 회사의 남자 화장실을 청소해 주시는 이모님도 생각난다. 화장실에서 소변을 볼 때, 동료와 화장실에서 짧은 대화를 나눌 때, 이모님의 존재는 삼자가 된다.)

나는 오늘도 『살인의 추억』을 본다.

Written by Chris Choi

March 25, 2017 at 8:41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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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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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다룬 영화는 ‘결정’을 해야 한다. 이준익 감독의 『사도』가 그렇다. 영조의 편에 설 것인가, 아니면 사도세자의 편에 설 것인가, 아니면 3자의 편에 설 것인가. 단순히 시점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다. 갈등의 원인이 누구에게 있는가를 결정하는 것이다.

김지운 감독의 『밀정』도 결정을 해야 했다. 실존 인물인 황옥을 어떻게 그릴 것인가? 친일에서 독립 투사로 변화하는 인물로 그리고 있다. 이정출은 – 적어도 영화 상에서는 – 악랄한 인물은 아니다. 김장옥을 포위한 일본군에게 ‘쏘지마!’, ‘물러서!’라고 말하며 그의 목숨만은 건져 내려고 한다. 김장옥의 부러진 발가락을 버리지 않고 갖고 있는다. 몇 차례의 위험을 무릅쓰고 김우진과 의열단원들을 돕는다.

오히려 그는 현실적인 사람이다. 기울어진 배에서 탈출하기 위해 친일로 돌아섰다. 그 결정을 다시 한 번 뒤집는 일련의 사건들이 영화에서 펼쳐진다. 정채산 (김원봉) 과의 만남, 김우진과의 우정, 히가시의 의심 등 이정출이 마음을 돌리게 되는 요인은 영화 내내 이어지고 있다.

이 같은 결정들이 역사적 논란을 점화하는 역할을 한다. 혹여 영화적 결정이 틀렸거나, 근거가 다소 빈약하더라도 지나친 왜곡이 아니라면 괜찮다고 생각한다. 진실이 무엇인지 밝히려는 시도이기도 하고, 역사 전문가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Link 1. “사도”]

 

알면서 모르는

보통 적과의 동행은 각자의 꿍꿍이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공동의 목표가 있다. 『의형제』를 보면 알 수 있다. 각자 필요로 하는 정보를 캐려는 꿍꿍이를 숨기되, 돈을 벌어야 하는 공동의 목표를 수행한되. 물론 공동의 목표는 표면적이다. 그러다 정말 의형제가 된다.

‘알면서 모르는 척’ 해야 하는 연기는 두 배우의 합이 굉장히 중요할 듯 하다. 한 쪽이 속내를 완벽히 숨기지 못하거나, 어색함을 이겨내고 공동의 목표를 수행하는 척 하는 데 실패한다면 긴장감은 흐뜨러진다. 송강호님과 공유님은 탁월하게 긴장감을 유지했다고 생각한다.

『밀정』의 난이도가 더 높았던 것은, 이정출 (송강호님) 이 하시모토 (엄태구님) 와의 동행도 그 긴장감을 유지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 호흡도 좋았다. 좌측과 우측이 팽팽히 맞서는 줄다리기와 다른 모습이다. 좌측은 한 명이 줄을 당기고 있지만, 우측은 두 명이 45도로 벌려 자기 방향으로 줄을 당기는 모습이다.

 

기차

주연 배우들이 『설국열차』와 『부산행』에서 제대로 된 기차 Scene을 경험해 봤기 때문인지, 『밀정』에서의 기차 Scene도 흠 잡을 점이 없었다고 생각한다. ‘알면서 모르는 척’이 극대화 되는 공간이 기차다. 화장실을 제외하고는 모두 열린 공간이다. 한 쪽에서 다른 한 쪽으로 가려면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을 만나야만 하는 것이 기차다.

우리 속의 밀정이 있음을 알게 되는 것이 기차다. 그 속에서 밀정을 찾아 내야 한다. 증거는 없다. 어떻게 증거를 만들 것인가? 김우진의 기지로 제한된 공간에서 밀정을 찾아 낸다. 그 과정에서 기저귀와 담배로 위기를 넘긴다. 가장 극적인 순간에 한 칸에 갈등의 인물들이 모두 모인다.

 

[Link 2. “부산행”]

 

자동차

기억에 남는 자동차 Scene이 두 개 있다. 상해에서 만난 이정출과 김우진. 기차 사건 이후 만난 이정출과 히가시. 뭔가 불편한 상황이다. 첫 번째 Scene에서는 김우진이, 두 번째 Scene에서는 히가시가 앞 좌석에 앉는다. 그들이 정면을 보고 있을 때는 심경을 표정으로 드러내고, 뒷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때는 표정을 숨긴다. 기차와 마찬가지로 닫힌 공간에서 느껴지는 긴장감은 무언가 다르다.

 

법정과 불고문

의열단원이라고 외치고 싶었을 것이다. 불고문을 하지 않도록 연계순이 김우진의 위치를 실토하기를 바랬을 것이다. 그러나 속내를 드러내면 모든 것이 엉망이 된다. 그래서 법정에서는 입술을 물고, 고문장에서는 소리를 지른다. 내 안의 두 마음이 겪는 갈등이 극에 달한다.

 

사진과 시계, 그리고 골동품

추억이 가장 잘 묻어 나는 물건을 떠올려 본다. 사진과 시계다. 빛 바랜 사진과 조금 녹이 슨 시계는 추억을 떠오르게 한다. 『밀정』에서 떠오르는 사물 역시 사진과 시계다. 사진은 ‘Tragic Flaw’다. 사진을 찍지 않았다면? 그리고 연계순이 사진을 찍어 달라고 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작전이 원활하게 진행되었을 지 모른다. 시계도 의미가 있다. 김장옥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시계, 정채산이 이정출의 마음을 돌리게 한 시계. 중의적 상징이 시계에 담겨 있다. 시계는 여러 장면에서 등장한다. 작전을 시작하기 전에 시계를 맞추는 장면을 여러 영화에서 볼 수 있다. 모두 같은 시각, 같은 방향으로 가야 하지만, 다른 시각을 향해 달려 가는 ‘밀정’이 있기 마련이다. 조회령은 자기만의 시각으로 향한다.

그러나 사진과 시계는 추억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다. 추억은 우리의 현재와 만난다. 이처럼 과거의 독립 운동은 과거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의 우리와 만나야 한다.

또 하나 골동품이 있다. 이정출과 김우진의 첫 만남을 이어 주고, 공동의 목표로 그들을 연결해 주는 것.

 

카메오 이상의 카메오

박희순님과 이병헌님이 카메오로 출연한다. 특이하게도 분량으로는 카메오 이상이다. 분량뿐만이 아니다. 맥락 상으로 그들의 출연은 중요하다. 특히 『작전』, 『용의자』, 『맨발의 꿈』을 통해 엄청난 연기를 보여 준 박희순님은 첫 장면부터 관객의 집중력을 모으는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Link 3. ‘용의자’]

 

일본인 배우들의 활약

히가시 역의 츠루미 신고님, 『곡성』에서 외지인 역을 맡은 쿠니무라 준님. 그들의 활약이 돋보였다.

 

[Link 4. ‘곡성’]

 

아쉬운

아쉬운 점이 한 가지 있다. 이정출이 마음을 바꾼 것. 정채산과의 만남도 있고, 김우진과의 우정도 있다. 경부로서의 지위를 버리고 위험을 무릅써야 할 이유로 충분한지는 모르겠다. 극 중 인물의 성장, 혹은 변모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친구

내가 만약 이정출이었다면? 내가 만약 김우진이었다면? 과연 어떤 선택을 했을지 궁금하다. 용기 있게 나설 수 있었을까?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시대의 자유와 평화를 감사하게 생각해야 하는 이유다. 히가시가 말하는 ‘친구’도, 정채산이 말하는 친구도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친구는 아니다. 서로를 속고 속이며 ‘작전’과 ‘임무’를 완수해야 하는 그들의 대결 속에서 승리를 쟁취해 주셨음에 감사해야 하는 이유다.

Written by Chris Choi

September 10, 2016 at 10:22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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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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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Michael J. Sandel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서점가를 휩쓸었다. 이유는 여러 가지이겠지만, 그 중 하나는 ‘정의의 부재’와 ‘정의에의 갈망’이었을 것이다. 영화 『변호인』이 무서운 기세로 흥행을 이어 가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이 영화는 노무현 前대통령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이 영화는 정의에 관한 이야기다.

정의를 다르게 표현하면 ‘상식’이라고 생각한다. 극 중에서 송우석 변호사가 자주 사용하는 표현이 있다.

이러면 되는 거잖아요.”

한 문장으로 상식을 표현한다.

 

번의 눈물

나는 이 영화를 극장에서 세 번 봤다. 세 번 모두 동일한 Scene에서 눈물이 났다. 송우석이 변호사가 되어 국밥집 아지매를 찾아 가는 장면이었다.

 

시대의 아픔

공권력:

고졸:

 

인간의 변신

영화는 송우석 변호사의 변신이 영화의 반전에 큰 몫을 담당하고 있다. 개연성이 있는지가 약간 의문이 든다. 영화에는 잘 표현되지 않았지만 (아마도) 동생처럼 아끼는 진우가 불법 고문을 당하고 있고, 국밥집 아지매가 눈물로 도움을 구하고 있었다는 것이 그 이유일 것이다. 학벌과 가난에 대한 Complex와 성공의 갈구를 뛰어넘을 만큼 그 이유가 큰 것인지 영화 상에서 공감하기 쉽지 않은 부분이 있다. (순전히 개인적인 의견이다. 실제로는 충분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1]

 

대체 불가능

송강호 아닌 그 누가 송우석 변호사 역할을 맡을 수 있을까? 곽도원 아닌 그 누가 송강호를 상대로 윽박지를 수 있을까? 상상이 되지 않는다.

 

[1] 영화 『체포왕』에서 황재성 (박중훈) 이 이속을 챙기는 경찰관에서 ‘의사’로 변신하는 부분도 유사하다. 한 영화 프로그램에서 감독이 밝힌 바로는, 황재성의 딸이 강간을 당하는 장면을 흐름 상 삭제했다고 한다. 그 장면이 있었다면 반전이 이해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 장면이 있었다면 극의 흐름은 그 속도를 잃었을 것이다.

Written by Chris Choi

September 28, 2014 at 4:06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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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상과 변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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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개월의 시차를 두고 개봉된 배우 송강호 주연의 『관상』과 『변호인』은 내게 마치 하나의 영화 같다. 한 감독의 영화 같기도 하다.

‘세상을 등지고’ 가난을 탈출하기 위해 살아 가던 주인공이 어느 날 ‘세상과 맞닥뜨리게’ 된다. 김내경은 아들에게 쌀밥에 고깃국을 먹이고, 좋은 옷을 입힐 꿈으로 상경하는데, 정쟁의 한가운데에서 왕을 위해 헌신하게 된다. 송우석은 찢어지게 가난했던 과거를 탈피하기 위해 나이트 삐끼처럼 찌라시를 돌리는 고졸의 등기 변호사, 세법 변호사였는데, 국보법 사건에  변호인으로 나서게 된다.

이 같은 변화에는 계기가 있었다. 김내경에게는 아들 진영의 정의로운 모습과, 아버지로서 아들의 미래를 근심하는 왕의 마음이 계기가 되었다. 송우석에게는 자신을 용서해 준 단골 국밥집 아주머니의 아들이 겪은 곤경과, 고졸, 속물 변호사로 취급하는 다른 법조인들의 불편한 시선이 계기가 되었다.

그들은 모두 서민이었다. 김내경은 역적 집안의 자식이고, 송우석은 국밥을 즐겨 먹었다. 송우석은 부산 지역 법조인 모임에서 먹었던 비싼 밥도, 대형 건설 회사 회장과 먹었던 비싼 밥도 모두 불편해 했다.

그들은 정의의 편에 섰다. 김내경은 역모를 막기 위해 왕의 편에 섰고, 송우석은 공권력의 탄압을 막기 위해 변호인의 자리에 섰다.

그들은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다. 만약 김내경이 수양 대군의 관상을 처음부터 볼 수 있었다면? 그리고 송우석이 윤중위가 탈영병으로 몰리지 않도록 조치를 취했다면? 가정이기는 하지만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장면들이다.

Written by Chris Choi

January 8, 2014 at 11:23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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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송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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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화 역사의 시작은 배우 송강호이다. 그를 알기 전에 내 인생에 영화는 없었다.

 

 

배우 송강호_Image 1.jpg

 

배우 송강호_Image 2.jpg

[Image 1, 2]

Written by Chris Choi

November 9, 2013 at 11:38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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