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is Choi

Posts Tagged ‘적자생존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leave a comment »

Survival

‘생존’은 우리의 영원한 화두다. 누가, 얼마나, 어떻게, 왜 생존하게 되는지를 알아야 앞으로 어떻게 생존을 이어갈 수 있을지 짐작해 볼수 있기 때문이다.

“Survival of the Fittest”

진화론을 알지 못해도 들어본 표현이다. ‘적자생존’. 어쩌면 굉장히 상식적인 말이지만, 조금만 다르게 해석하면 무시무시한 말이 된다. 적자는 강자가 아니다. 생존은 자연의 질서다. 자연의 질서가 무시무시하다는 말인가? 진화론을, 적자생존을 오해하고 있는 듯하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는 비슷한 논란으로 이어졌다. 표현에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 유전자는 생존을 위해 이기적일 수 있다. 다만 수사적 표현이다. 우위와 열위로 개인과 집단이 나누어진다는 것이 아니다.

[Link 1. ‘이기적 유전자’]

Fittest to Friendliest

세상을 살아가는 데 경쟁이 전부일 수 없다. 물론 협력이 전부일 수도 없다. 경쟁과 협력이 적절히 어우러지는 사회가 생존에 강한 사회일 것이다. 다만 경쟁이 전부인 것처럼 여겨지는 사회에서 협력의 중요성은 더욱 부각되어야 한다.

“Survival of the Friendliest”

다정함은 협력적 의사 소통을 부른다. 협력과 공유는 혁신을 낳는다.

약육강식, 양극화. 홀로 혁신할 수 없다.

가축화

가축화는 신체 변화와 더불어 친화력을 증가시켰다. 대신 공격성을 낮췄다. 사람의 마음을 읽는 능력도 증가시켰다. 사람이 손가락을 가리키는 곳을 바라볼 수 있는 것이 단적인 예시다.

Cruelty

그렇다고 모두에게 친절하고 다정한 것은 아니다. 우리 집단 외의 존재에게, 특히 위협을 가할 것 같은 존재에게 다정할 수는 없다. 집단을 수호하기 위함이다. 종족을 지키는 것은 자연적인 본능이므로 이상할 것은 없다.